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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1차전 모로코전 당시 서양 기자들 분위기는 이란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이었다고 합니다. 말이 좋아 “늪 축구” 이지 패어플레이에 입각한 공격 대신 지저분한 수비로 거의 모든 서양 매체들의 평은 “아시아 축구가 그렇지…” 가 될 뻔 했다가 막판에 모로코의 자책골로 “행운도 실력” 이라는 면을 감안하여 긍정적으로 “아시아 특유의 수비 축구”로 좋게 써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2차전이 벌어지고 전형적인 침대축구가 나오면서 역시나… 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한골 먹자마자 사라진 침대축구를 비판하는 기사가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유럽국가인 독일과 스웨덴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후 독일 코치진이 스웨덴 코치진에게 “그렇게 누워서 침대축구를 하니 골을 못넣고 졌잖아!” 라고 말한게 화근이 되어 두나라 코치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피파가 조사에 들어갔을만큼 서양인들에게 치사한 침대축구는 금기시되는 관행이더군요.
공격 능력이 모자라는 아시아팀이 수비 위주로 전략을 세우는 것을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며 유럽팀들도 전력이 모자라면 버스 세워놓으므로 충분히 납득할만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침대축구는 하지 말아야 치사하다는 소리는 안듣겠죠.
게다가 마지막 포르투갈과의 3차전 직전에 포르투갈 대표팀이 머무는 호텔 마당에서 이란인들이 밤새도록 부부젤라를 불어제껴 호날두의 수면을 방해했다는 기사 보니 제가 겪었던 이란인이 떠오르더군요.
일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오로지 알고 있는 정보는 캐나다인이었다가 미국인과 결혼해서 이제는 미국인인 30대 중반의 여성이라는 정도였습니다.
첫눈에 바로 중동 여성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다소 거무잡잡한 피부색에 매부리코 등 손쉽게 중동 출신임을 알 수 있었기에 캐나다에서 태어난 중동 여성이 미국 남성과 결혼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인종이었기에 당연히 중동 어느 나라 출신이라고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의외로 자신을 “백인” 이라고 하네요.
그럼 부모님 중 한분이 백인인가 보다 하고 혹시나 하고 부모님 인종을 물어보니 약간 머뭇거리다가 “페르시안” 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아! 이란 출신이군요” 했더니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보이며 자신은 캐나다인이고 백인이며 그러기에 남편도 백인이라고 하네요. 이해가 안가서 외모 면에서나 부모님이 모두 페르시안이면 당연히 당신도 페르시안이지 왜 백인이라고 하니까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줍니다.
결혼식 사진들인데 결혼 사진이니 당연히 이쁘게 포샵을 한 것은 당연하지만 사진속의 신부 얼굴과 실제 얼굴이 비슷은 한데 다르더군요. 사진만 봐서는 하얀 피부에 얼굴 윤곽 등 모든 면에서 약간의 동양인의 피가 섞인 백인, 아니면 아얘 백인이라고 해도 통할 정도의 얼굴입니다. 왜 사진과 실제 얼굴이 차이가 나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진짜 모습을 사진이 반영하지 못하기에 자기가 직접 포삽을 해서 손을 봤다고 하네요. 참고로 이분은 디자인 계통입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서 질문을 거듭해보니…
집안 종교가 무슬림이 아닌 수천년된 페르시아 토착종교를 따르기에 이란에서 종교박해를 받아 친척들이 모두 공개교수형에 처해져고 다음 차례가 이들 가족이 될 것으로 예상되어 10살 즈음에 터키로 탈출했다고 합니다. 다소 개방적인 터키이지만 무슬림 국가이므로 여전히 종교박해를 받아 12세에 캐나다로 종교이민을 갔고, 5년전에 미국 남자와 결혼해서 이제는 미국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모국인 이란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나서 자신은 더이상 이란인이 아니고 캐나다인/미국인 이라고 강변하네요.
그래서 국적은 이제 캐나다/미국인이 맞지만 인종은 여전히 페르시아인이면 중동아시아인이지 백인은 아니라고 했더니만 발칵 화를 내면서 자신은 이란 국적을 버렸기에 아시아인이 아니며, 12살에 캐나다에 와서 13년 이상을 서양에서 더 오래 살아서 서양문화가 더 편하고, 영어가 더 편하기 때문에 자신은 동양인이 아니라 캐나다 출신 백인이라고 하네요. 혹시 주변에 다른 페르시안들은 뭐라고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 페르시안 친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들을 “백인” 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나도 미국에 오래 살아서 한국에서 산 것보다 오래되고 영어가 더 편해지면 나 역시 “백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 했더니 그건 아니랍니다. 자기는 얼굴이 백인 비슷하기에 백인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인인 저는 절대로 백인이 될 수 없다고 하네요.
인터뷰는 당연히 파토났죠. “이란인” 여성분이 감정적으로 자제를 못하고 폭주하더군요. 자신을 감히 백인이 아니라 동양인이라고 했다고 엄청나게 화를 내더군요.
얼마나 백인들에게서 차별을 받았으면 저렇게 자존심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백인 행세를 할까 하는 불쌍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 축구 경기에서 보여준 치사한 침대축구, 밤새 부부젤라를 불어제끼는 인성을 감안하면 이들은 어쩌면 문화 자체가 거짓말이 기본으로 장착된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주변 이란인들이 모두 백인 행세를 한다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와 문명을 빛나는 유산으로 가진,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민족적 자존심은 어디에 두었나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