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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오퍼 준 회사가 개같은 회사라며 욕했던 사람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미국으로 구직 중입니다. 비자는 H-1B가 있어서 트랜스퍼만 하면 됩니다.
오퍼를 받은 회사가 여러 가지로 아주 마음에 들었고, 회사에서 처음에는 H-1B를 해주려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는 니가 비용을 부담해라, 컨트랙터로 시작해라 이런 식으로 자꾸 조건을 안좋게 하길래 여기 글을 써서 욕했었습니다.그 회사랑 껄끄럽게라도 어떻게 진행을 꾸역꾸역 하다 보니 CEO가 솔직히 얘기하더군요. 제가 너무 demanding한 스타일이라 회사랑은 안맞을 것 같다고…
그 얘기를 듣고서 제 자신을 돌아보니 첫 오퍼 협상 전화부터 연봉이며 스톡옵션이며 비자, 영주권이며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발악하던 게 생각나서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회사도 처음에는 제가 마음에 들어서 비자도 해주려고 하고 가능한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맞춰주려고 한 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욕심 부리니 괘씸해서 일부러 더 말도 안되는 조건을 준 것 같습니다.
눈치라도 채고 죄송하다고 그냥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면 됐을텐데 저는 왜 그런가 싶어서 더 방어적으로 나오고 회사에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저희 아빠는 항상 얘기하셨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연봉이니 뭐니 이것저것 바라고 하면 저한테만 손해라고. 무조건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겠다고 얘기하고 가서 열심히 하면 연봉도 알아서 올려준다고.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니고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생각하라고.
저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왜 내 실력이 어떻다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고, 한국 기업이랑 미국 회사랑은 다른데 아빠가 그 바닥을 잘 모르셔서 하는 소리인가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고, 아무리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더라도 저희 아빠가 말한 것처럼 돈에 연연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인재를 싫어할 사람도 없고 왠만한 실리콘밸리 회사들 정도면 그런 인재가 착취당하는 일도 제가 우려할 정도로 많지는 않을 텐데 왜 그런 걱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찾기 드문 정말 좋은 회사같은데 제 욕심에 기회를 날려버리고 나니 후회가 너무 심합니다.
기회만 준다면 그냥 용서를 빌고 열심히 하고 싶은데, 이미 추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서 아마 안될 것 같습니다.이번에도 기회를 날리면서 비싼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나를 믿어주고 써주는 회사가 있다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회사에서 어떻게 해야 더 받아낼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해야 회사에 도움이 될까 고민을 하고 성실히 일하다보면 회사에서도 고마워서 더 잘 해주리라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데 간과하던 교훈이었습니다.사실 제가 좋은 기회를 날리거나 날릴 뻔한 적이 왠만한 사람들에 비해 여러번 있었습니다.
제 실력은 그냥 그렇습니다. 어디 하나 취직하는 것도 힘겨운 실력입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제 실력에 비해 좋은 기회들이 왔는데 여러 이유로 날려 먹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고 후회하면서 비싼 교훈을 얻고 많이 스스로 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날아가버린 그 기회들을 생각하면, 그 기회들을 잡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더 정직하고 더 겸손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을 합니다.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산전수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오만하고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이는 만 서른인데 책임감이며 현실 감각도 없고, 부지런하지도 않고, 물질욕이 많은 건 아닌데 좀 거지근성도 있어서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더 고생하고 후회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신이 있다면 이런 시련을 통해 저를 더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사실 거지근성때문에 회사에서 실수하고 후회한 이후로 이제는 회사에서 그냥 쓰는 종이 한 장도 개인적인 용도면 직접 사서 쓰는 사람으로 변했는데, 오퍼 협상에 있어서 왜 이런 거지근성이 또 나온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퍼 협상 관련 글은 괜히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건 나중에 여러 회사가 데리고 싶어하는 인재가 돼서 정말로 여러 오퍼들의 조건이 고민되는 상황에서나 고민할 걸 싶습니다.
아무튼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는 생각이 깊고 정직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열심히 하면 잘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지금이라도 제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야 그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느끼고 다짐만 하고 끝내면 실수를 통해서 배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못하고 앞으로 몇 년 보내면 정말 눈만 높아서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뿐인 삶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나이에 비해 이룬 것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어서 조바심이 좀 들어서 더 요구한 게 사실입니다. 나이가 어린 편은 아니다보니 빨리 돈 많이 벌고 영주권 따고 결혼도 잘 해서 잘 살아야 하는데 언제 하지 하는 조바심이 현재 좀 큽니다.
하지만 그냥 돈 욕심, 영주권 욕심, 결혼 욕심은 최대한 잊고 겸손하게 열심히 해야 될 것 같습니다.요 며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 회사에 못가게 된 후회와 다시 기회가 올까? 하는 불안이 저를 괴롭혀서 잠이 안왔습니다. 자는 동안에도 계속 그 생각 뿐이었습니다.
진짜 다시 일어설 용기가 안나는데, 본인들도 어려운데 한국 들어와서 취직 준비하고 있는 저를 물심양면 지원해주시는 부모님 생각하며 다시 일어나야겠습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저를 보면 저희 엄마는 마음 아파서 앓아 누우십니다. 별 효도도 못하는데 그런 부모님한테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보여드리면 안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기회는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번에 날린 기회처럼 좋은 기회가 올지는 모르지만 그런 좋은 기회에 맞는 자격이 아직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왠만한 기회가 온다면 정말 성실하게 일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