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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미국 와서 대학 졸업하고 일 하고 있는 30대 초반 남자입니다.
예전엔 부모님이랑 마찰이 심하긴 했어도 미운 정 고운 정 들어서 사랑하는 마음도 더 깊었는데, 다른 환경에 떨어져서 오래 살다 보니 그런지 나랑 많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떨 때는 답답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또 어릴 때는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도 어리고 지능 발달이 덜 돼서 그걸 생각으로 정리할 줄도 몰랐고 같은 일이 반복 돼도 패턴으로 인식을 못 했는데, 이제는 무슨 말씀만 하셔도 또 같은 얘기하네 싶고, 그 동기가 보여서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래 떨어져 살다 보니 그냥 아줌마 아저씨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는 미국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엔 미국에 저를 뺏겼다는(?) 적개심같은 게 있고, 걱정이 10%라면 그 적개심 때문에 미국 욕을 하고 싶은 욕구가 90%인 듯 합니다.
또, 여자 만나라고 푸쉬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부모님도 그걸 알고 자제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학생 때 여자 만난다고 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어디 갔다 온 사진만 보내도 동생한테 제가 누구랑 갔는지 아느냐 뭐 그런 걸 캐묻는다고 하십니다. 전 여자친구 있는 것 아셨을 때도 “가끔 집에서 자고 가기도 하고 그러니?” 하는 속보이는 질문을 하고..
그것도 그냥 결국에는 종족번식 욕구 때문인데 “네가 행복했으면 해서 그러지” 라든지 “타지에서 외로운데 혼자 지내니깐 그러지”라는 식으로 둘러서 말 하는 게 더 싫습니다.
오지같은 곳에서 차도 없이 집-도서관만 오가는 생활을 수 년을 해서 외로움을 안 탄다고 수 차례 말씀 드렸는데도 제가 하는 말은 신경도 안쓰는지 본인 욕구에 잊으신 건지 “외로울테니 누굴 만나라”는 말을 반복하시는 부모님.. 그리고 행복해서 그러길 바란다면 제가 동성애자였더라도 누굴 만나라고 푸쉬를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여자친구가 있지만 말 하기가 정말 싫어집니다.물론 아직도 사랑하고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가득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도 적응을 너무 못해서 힘들었던 저를 어려운 사정에도 유학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평생 효도하고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들과 내가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도 달라서 이질감을 느끼고, 그 구식 사고관에 고집으로 제 상황에 (특히 어려울 때) 조언이라며 했던 말들, 키워온 방식 등을 아직도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곱씹습니다.
이 나이가 됐으면 잊고 품어 드리는 게 맞겠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부모님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 했고, 그냥 유복하고 평범한 집안인데도 그렇습니다.
이게 원래 이런 건가요? 부모님이랑 (주로 엄마랑) 일주일에 한두 번 1시간 정도 영상통화 하는데, 그냥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덜 가까이 지내는 게 서로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