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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냥 핸드폰에다가 끄적인걸 찾아서… 미국 계리사 잡 헌팅 경험담(?)이에요. 저 혼자 보려고 적은거라 반말이긴한데 양해 바랍니다.
2015년 여름이었나. 경력이나 쌓고자 한 데이터 애널리스트 일이 실증이나서 계리사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이제 갓 졸업하고 계리사되려고 하는 졸업생들 평균 GPA 3.5 이상. 부끄러운 내 GPA 2.6. 무슨 오기였는지 그래도 난 이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100군데가 넘는 보험회사에 어플리케이션을 보냈지만. 결과는 뻔했지. “Thank you for showing interests… but…” 그렇게 좌절하고 자괴감도 들고. 포기해야하나.
근데 이 일이 너무나 하고싶은거야. 계리사라는 직업이 계속 공부하면서 내 자신을 발전시키고 보험회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직업인데. 얼마나 멋있어. 무슨일이든지 해서라도 계리사가 되어야겠드라고.
미국 전국에 있는 계리사들 이메일 모아가지고. 계리사 일이 하고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음에 15분만 시간내줘서 전화통화 해줄수 있겠냐고 물었지. 소중한 조언을 얻고 싶다고. 이메일 한 500개 넘게 보냈는데 한 15% 조금 넘게 답장이 왔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드라. 10분정도 전화한 사람도있고. 플로리다에 있던 계리사는 1시간 넘게 칭찬해주면서 계리사란 직업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어떻게해야할지 조언도 해주고. 정말 감사하지. 또 기억에 남는
한명은 가까운곳에 살아서 토요일 아침에 커피마시면서 한시간 넘게 대화하고. 그냥 멋있드라. 계리사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진편이 아니라서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이렇게 적극적인 애를 보니 신기했나?전부다 긍정적인편은 아니었어. 한명은 이런식으로 일하는거 방해할바엔 회사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직접 지원하라고 화낸적도 있고. 난 단지 이메일 하나 보냈을뿐인데. 상처받긴했어도 그사람 원망하진 않아. 그날 사정이 있어서 그냥 단지 기분이 안좋았겠지.
이렇게 얼굴에 철판깔고 노력하니까 인터뷰도 몇개 보게되고. 운이 좋았던건지 계리 인턴자리 하나 오퍼 받았어. 큰 고민이었지. 풀타임 데이터애널리스트를 계약직 인턴자리를 위해 포기해야하나. 인턴이 풀타임으로 전환이 안되면 난 다시 이 지겨운 잡 헌팅을 해야할텐데. 그때 순간 든 생각이. 이메일 하나 보낸걸로 욕도 먹고 숫기 없는 내가 생판 모르는사람한테 전화도 걸어보고. 계리사가 하고싶어서 이정도로 노력한건데. 그렇게 계리 인턴생활을 시작하게 됐어.
우물안에 개구리드라. 아무리 직업상 일하면서 배워야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 일단 내가 잘할수있는거엔 최선을 다했고. 배워야할때는 노트정리까지 해가면서 배웠어. 그렇게 하다보니 사람들 귀에도 들어가고. 조금씩 인정도해주고. 인턴 프로젝트한거 발표했을땐 다른부서 계리사들한테서도 칭찬받고. 즐겁고 행복했던 6개월 인턴 생활이 끝나갈때쯤. 운이 안좋았던건지 아님 실력이 부족했던건지 내가 속해있던 부서에 신입 자리가 안나드라고.
그렇게 난 다시 붕뜨고. 지겨운 일자리찾기가 다시 시작됐어. 거의 반 포기 한 상태로 한국에 놀러나갔는데. 이메일 하나 와있드라고. 인터뷰 진행하고싶다고. 전화로 인터뷰 두번했는데 당연히 시차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비몽사몽인 상태로. 마지막 온사이트 인터뷰 초대하드라. 미국 돌아가는 날 이틀 후에 보자고. 시차적응도 못해서 잠도 못자가지고 눈 시뻘게져가지고 어찌저찌 면접보고. 내 생각엔 이번껀 심하게 망쳐버린 인터뷰중에 두번째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내가 뱉은 말중에 먼가 마음에 들은게 있었나봐. 다음날 아침에 보이스메일 하나 와있더라. 축하한다고. 면접관들이 만장일치로 나 뽑기로했다고. 기뻐야하는데 그냥 멍했어. 떨어졌다는 답변만 들은거에 익숙해져버린건지. 그냥 아무생각도 안들고.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다.
하고싶은말은. 참 맘편한 생각인거 알지만. 무직인 상태로 일자리 알아보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거 다 알아. 나중엔 그 힘들고 고통스러웠던거 기억 잘 안나고 앞으로의 미래에 집중하게되더라. 결국 끝까지 포기 안하는사람이 이기는 게임인거지. 내가 다 겪어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