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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없는 100% 제 개인 이야기입니다.
매번 댓글만 남기다가 장문의 글을 하나 남겨볼까 합니다.
여기서 늘 느끼는거지만 거의 대부분의 유저분들이 고학력(?)이시고, 그분들의 길은 이미 잘 알려진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쭈욱 보면서 느낀거지만, 저 처럼 저학력(흔히 가방끊 짧다고 하죠?)의 늦은 나이(제 나이 30 중반을 바라봅니다)에 이민으로 정착하는 케이스는 못본듯 합니다. 가끔 댓글을 보면 오지말라, 도피성이다, 실패한다 등등 부정적인 답변들도 있고, 반면 도전해봐라, 가능하다 등등 가끔 긍정적인 댓글들도 보았습니다. 전 부정도, 긍정도 아닌 제 개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전 흔히들 말하는 저학력자입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복무 2년하고, 2년제 전문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고 졸업하자마자 TV나 드라마를 보고 미국에서 여행보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에 놀러온 케이스입니다. 그렇다고 막상 관광만 가자니 아쉬움 감이있어서 어학연수를 짧게 생각하고 대학교다니면서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왔는데, 사실상 금액이 얼마되지도 안아 어학연수 3달 정도? 가 한계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23세 이었습니다. 그때 당시만해도 전 미국에 대한 이민은 전혀 생각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왔을때는 말 그대로 배운게 없는 저학력이다보니 그냥 학창시절에 책으로 배운 초등학교 수준도 안되는 영어가 전부였고, 어학원을 가더라도 계속 문법과 읽기만 가르치기 사실상 영어는 늘지 안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 온건 사실상 시간낭비 돈낭비였습니다. 그와중에 예상치 못했던일이 어학원에서 제또래, 혹은 나이가 좀더 많은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별별 케이스(자녀 공립학교때문에 출석하시는분, 영주권 수속중이라 출석하시는분 등등)의 사람들을 다 만나고 이야기하다보니 Cash Job 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왔을때는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그때당시만해도 경기가 너무 좋아서 식당에서 일하면 하루 $200 은 거뜬히 벌었지요. 한참 돈맛에 빠져서 지내다보니 흥청망청 쓰기도하고, 놀러다니면서 시간낭비만 언 2년정도 하였습니다. 처음 3개월 생각했던게 어느듯 3년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전혀 불편함도 없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라는 생각도 잊은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제자신이 챙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불만불평에 대한 챙피가 아니라, 식당일만하면서 돈은 벌어도 몸은 축나고, 매번 이유없이 어학원 출석하면서 멍하니 멍때리고 앉아서 돈만주고 온다는게 사실상 X팔리는 실패한 인생으로 느껴졌습니다. 또한, 주변에서 저를 엄청 유혹했던게 비자를 포기하고 불체자로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사면해주고 영주권 준다는 카더라는 소리가 저를 너무나 유혹했었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그냥 비자는 계속유지했고 그동안 조금모아둔 돈으로 CC에 진학하기로 했었습니다. 사실 한인 사회에서만 살다보니까 영어가 전혀 되지도 않아 학교를 간들 뭘 전공할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고요. 그때 당시만해도 제 주변에 돌던 이야기가 RN 하면 졸업하고 바로 취업되고 영주권 준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영주권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무생각이 없이 RN 한답시고 공부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GPA 2.0 도 안나오고 (RN 본과 갈려면 올 A 가 나와도 간당간당합니다.) 몇과목 Fail 해서 결국 다시 어학원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공부도 역시 해본 사람이 한다고 아무것도 머리에 든게 없이 시작하면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따라가지 못하더라구요. 사실 어학원으로 쫓겨오다 해서 왔는데… 결국은 고민을 했습니다. 한국가야되나 말아야하나… 그때 제나이 26… 한국갔으면 솔직히… 할꺼도 없고 말그대로 인생의 낙오자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일까요? 한국갈려고 마음먹은 순간, MAVNI (다들 뭔지 아시죠?) 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해서 들어간 1기 멤버중 한명입니다. 주변에는 반대 반, 찬성 반이었습니다. 위험하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고, 시민권준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생각없이 어플라이하고 프로세싱을했는데, 첫 시행이라 그런지 다들 진행도 어영부영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문제점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영어였습니다. 가서 무슨 말을 알아들을까하고… 처음에 입대할때보는 ASVAB 은 그냥 대충 찍어서 커트라인을 넘어 통과했었습니다. 한가지 다행이었던건, 학생비자를 포기할까 말까할때 포기안하고 유지했던게 신의 한수였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입대를 했고, 훈련소 들어가자마자 “Non-U.S. Citizens, raise your hands” 라고하는데, 제가 저런 기초적인 영어조차 못알아들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제가 못알아 듣고 두리번거리면서 앞에있던 훈련교관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니까 아주 우렁차게 큰 소리로 또박또박 “Do you need it?” 라고 한걸로 기억하는데, 모르고 Yes Yes 라고 하니 따라오라고 같이가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막 설명하면서 N400 주고 작성해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열심히 영어 사전 찾아가면서 체크하고 작성한다음 제출하니까 날짜 주면서 어디로 가라고 하더군요. 제가 알기로 이민국직원이 훈련소로 정해진 날짜에 출장을 온다 하더라구요. 만나서 인터뷰하고 지문 찍고, 영어 시험을 봤습니다. 사실 시민권시험 100문제? 있다는것도 모르고 공부도 안하고 그냥 갔었습니다. 영어 시험이 참 어처구니 없는게… 받아쓰기 하라는데 “I like an apple” 이런거 불러 주면서 적으라하고, 듣고 말하는것도 지금 대통령이 누구냐 이런식의… 쉽게말해 군복무한다고 붙여주는(?)식의 형식이었습니다. 어찌되었던 모든걸 다 통과하고 다음날 바로 선서를 했습니다. 저말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몇명 있었는데 한국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그렇게 저어연~ 예상치못하고 취업비자나 영주권조차 구경못해고보고 바로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걱정과 다른게 영어가 저어언혀~ 필요가 없는 정도는 아니었고, 몰라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애들조차 앞에서 교관들이 소리지르고 군대영어 사용하면 이해가 어렵고 어리버리한 상황이라 옆에서 달리면 같이 달리고, 밥먹으면 같이 밥먹고 하면서, 적은 돈이지만 주급(2주에 한번씩) 꼬박 꼬박 박으면서 그렇게 미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한번 다녀온 상황이기 체력적이나 군대 훈련은 그냥… 편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것보다 쉬웠지요. 무조건 4년 계약이 기이기에 4년의 군생활을 해야했습니다. 4년동안 영어는 진짜 많이 늘어서 왔습니다. 억지로 공부할 이유없이 애들하고 어울리다보니 영어 늘더군요. 단, 여기서 공부 열심히하신 분들처럼 학술적인 영어는 전혀 늘지가 안습니다. 말그대로 생활에 문제없는 생활 영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4년동안 파병도 2번이나가고 영어 공부(?), 미군 베네핏 받고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계약 연장을 할수 있었지만, 시골에 살면서 (군부대는 대부분 시골쪽에 많아요) 수시로 파병가는게 너무 지겨웠습니다.사회로 돌아와서 2가지 선택있었습니다. 첫째는 미군 베네핏인 지아이빌 가지고 대학가서 공부하는거. 둘째는 그냥 취업하는 거였습니다. 대학공부는 사실상 포기했었습니다. 제 머리와 영어 실력가지고는 어림없을 것이고… 그래서 결정한게 취업이었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아무리 신분문제가 없다한들 배운거없고, 머리에 든거없고, 기술이 없으면 단순 노동직 밖에 할게 없습니다. 한 6개월? 동안 2-3주에 한번씩 Job 을 바꿔가면서 이거하다 저거하다 별별거 다해봤지만, 뚜렷한 미래도 안보이고 흥미도 없는 직업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간곳이 (제가 지금 근무중인곳) 큰 한인 회사인데(부서만 10개에 직원만 500명이 넘음), 들어가기전에 이미 한인사회의 고질적인 악평들을(임금착취, 야근, 악덕업주 등등) 이미 들어왔기에 기대도 안했고, 단지 해보자는 이유로 시작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곳은 물류쪽인데, 이게 흔히들 말하는 3D 직업군중 하나입니다. 들어가면서도 “아… 무식하게 힘만 쓰겠군아.” 하고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부서에 직원이 60명 인데, 한국사람은 4명(저 포함), 나머지 56여명은 남미, 흑인, 몇몇 백인들 이 단순 노동으로 박스만 계속 쌓고 나르는 정말 말그대로 3D 중에 3D 였습니다. 저도 처음에 몇달은 박스만 쌓고 날랐습니다. 셀러리는 State 미니멈으로 시간당으로 받았고요. 솔직히… 바로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부서장에게 말하고 나갈려고하는데, 어느분께서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서 다른 IT 부서의 외국인와 컴퓨터를 수리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보고 영어좀 하냐고 하길래 조금 한다하고 제가 영어로 듣고 말하면서 컴퓨터를 수리하고 이런저런 프로그램 관련 설명을 듣고 배운다음 다시 한국분에게 설명하고 처리해드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서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할려고 하는데, 좀전에 한국분께서 “이 젊은 친구 영어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던데요? 포지션을 바꿔보시는게 어떨까요?” 하고 부서장에게 먼저 말했었습니다. 전 멀뚱멀뚱 처다만 보고 있었는데, 부서장과 얼떨결에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영어 얼마나하는지, 컴퓨터 어떻게 얼마나 다루는지 등등 쭈욱 물어보시더니 알겠다고 일하라고 돌려 보내시더군요. 전 그만두겠다고 말하러갔는데 제가 할말은 못하고 왔습니다. 다음날 이제 말해야겠다 싶어서 갔더니 부서장님께서 “HR에 이야기 다되었으니, 오늘부터 컴퓨터 어시스트하고 제어하면서 일해. 임금은 어카운트 부서에서 조정해서 새로 반영될꺼야.” 사실 어처구니는 없었지만, 일단 하라고 하신거니 했습니다. 계속 박스만 쌓고 나르다가 컴퓨터앞에 앉아서 조정하고 입출고 기록하고, 외국 사람들오면 제가 대신 영어로 이야기하고, 간혹 사람하나 안나오면 대신가서 박스좀 날라주고 하는게 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하는 영어라곤 정말 기초적인 생활영어고, 컴퓨터라 해봐야 MS Office 기본으로 다루고, 인터넷 좀 하면서 윈도우 셋팅하는 정도? 정말 기술도, 배운것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주신게.. 뭐랄까… 예상치 못한 기회? 였던거 같았습니다. 몇주후에 페이첵을 받아보니 셀러리가 2배로 올랐고(물론 여기 고학력의 STEM 하시는 분들에게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각종 베네핏(보험, 401K, 유급휴가 등등) 다 제공받으면서 편하게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올수 있었던건 우연은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100% 수작업으로 모든들 다 해야하기에 오래전부터 일해온 한국 분들이 몇몇 뿐이었고, 전부다 나이가 50을 넘어 가셨습니다. 제가 우리회사 부서의 막내입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70% 정도가 자동화가 되어서 일부 박스나르고 쌓는 쪽만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나머지는 전부 컴퓨터 자동화가되어 인력이 다시 배정되고 짤릴 사람은 짤리게 된것입니다. 그렇다고 100% 자동화가 아니기에 여전히 사람의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나이 드신분들 하나하나 나가시면서 새로운 사람을 뽑을려고 했지만 다들 몇일만 일해보고 힘든일이고 돈이 적다는 이유로 몇년째 사람을 못구했다고 합니다. 가급적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한국 사람들을 뽑고 싶어했는데, 다들 3D 라는 이유로 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명한명 나가고 나이 드신분들만 남으셨는데, 저처럼 아직 젊고 기초 영어라도 하면서 컴퓨터 다루는 사람을 못구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외국사람들도 인원이 다 채워지고, 특히 나이 드신분들은 영어가 안되기에 다들 힘들어하고요. 제가 다니는 직장은 스트레스는 Zero 입니다. 그냥 시키고 부탁하는 일들만 처리해주고 제 할꺼만 하면됩니다. 실적을 올릴필요도 없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주급 꼬박꼬박 나오고, 컴퓨터 제어하면서 노동력 제공하는 외국인들 관리하고, 무엇보다 정년이 보장되다 보니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의 저 학력을 가지고 미국정착한 제 이야기의 결론
– 미국 이민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없다. 하지만, 고학력의 STEM 전공해서 영주권 수속할꺼면 아니면, 각오하고 오시라는거
– 정말 잘생기고, 돈많아서 시민권자 꼬실꺼 아니면 불체자 하지말라는 거. 불체자하면 기회가 와도 놓친다는 거
– 무조건 한국 회사라고 “안가” 그러지말고 잘 노려보면 괜찮은 자리가 있다는 거
– 본인이 고학력이 안된다면, 저학력으로 할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면서 기회를 노리라는 거
– 기회있으면 신분문제 무조건 해결하라는 거도움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