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게 제가 포닥할때 보스가 작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이 1980년대 초반에 시작하고 중반쯤에 발견한걸 가지고 상을 받은것이기에 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겐 별로 영양가 없었지만, 그래도 제가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 상을 받으시니 기분은 좋더군요.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보면 대부분이 지금부터 10-20년 내외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제가 처음 실험실 다운 실험실에서 실험을 시작한게 1996년 영국으로 유학가서 입니다. 오로지 학생은 실험에 연구에 전념할수 있도록 배려해주는데 감동이 아니라 충격이었습니다. 유학 오기전에 석사까지 마친곳은 한국에서 최고라고 하는 학교의 실험실이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죠. 1990년대 초반엔 뭐 실험하나 하려고하면 초자기 딱아서 멸균해야죠, 배지 만들어서 멸균하고 디쉬에 부어서 굳혀야죠, 버퍼 만드는데 PH Meter가 맞는건지 알수도 없죠, 밀리큐 워터같은건 학교에 하나 있었으니 그 방가서 물길어와야죠, 외국에서는 컨탐될까봐 쓰고 버리는 엘로팁이랑 에펜도프 튜브 쓴거 모아서 닦아놓고 멸균해야죠, 아 거기다 아침마다 청소해야죠. 이렇게 하루 이틀이 보내고 그럼 대단한 실험을 하는가? 절대 아니죠. 분자생물학 실험들은 순도에 민감한것들이 많아서 비싼돈 주고 사온 키트에 쓰여져 있는데로해도 학교의 인프라가, 아니 당시 우리나라의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았기에 깨끗한 결과가 나오잘 않죠. 이런게 우리나라의 지난 10년 20년간인데 당분간은 노벨상 적어도 기초분야에선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분하지만.
윗분이 일본대학은 경쟁 안하는데 왜 노벨수상자가 많은가 하셨는데, 일본은 우리나라가 단발령으로 머리 자르니 마니할때 벌써 결핵균을 분리해내고(키토사토),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할 정도로 당시엔 선진국, 또 분하지만, 이었습니다. 또한 한우물을 파는 문화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제가 공부했던 영국 대학의 과에선 1940년대 플래밍이 발견한 푸른 곰팡이를 페니실린이란 약으로 만들고, 당연 이 팀을 이끌던 교수와 플래밍은 노벨상 받았구요. 그 연구팀에서 일하던 분은 50년대에 항생제를 개발, 이 약의 특허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제가 공부하던 과에 전액 기부하셨습니다. 그 돈들이 이어져서 저처럼 먼 코리아에서 온 학생한테도 97년도 한국의 경제위기로 인한 생활고에 신경쓰지 말고 연구하라며 생활비를 대주더군요.
결국 나라가 부자가 아니면 연구비에 돈 쓸만큼 여유도 없고 그러면 남들 키트 사고 숙련된 테크니션이랑 일하면서 항상 연구에 관한 생각만 하며 연구에 속도낼때 지난 날의 우리는 위에서 말한 허접대기 일을 하니 암만 창의적인 생각이 있다한들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깔금한 결과내기는 우물에서 숭늉 찾기란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점점 나아지겠죠. 학교에 가보니 장비들은 많이 좋아졌는데, 아직도 조금 부족한게 보이더군요. 과도한 강의부담이라던지, 연구비 나눠먹기라던지, 창조적인 리더의 부재라던지, 실험실내의 서열문화등등,
노벨상 받은 분들의 업적은 많은 경우에 꼭 상을 받겠다고 디자인 한것들이 아닙니다. 열심히 하다보니 상을 받는 것이고, 저의 ex-boss 처럼, 또한 남들과의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는것에 저는 과감하게 한표 던짐니다. 나중에 다수에 의한 연구결과에 의미가 부여되면 경쟁자든 동업자든 함께 상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위에 말씀드린 제 ex-boss는 아마 십년내에 또 한번, 이번엔 화학상, 받지않을까 하고 주변에서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죽기전엔 한국에서 순수과학으로 노벨상 받는 분이 나오기를 기대해 볼까합니다.
밑에 노벨상에 대한 글에대한 저의 짧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