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vs 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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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194.11 7235

    안녕하세요. 투자은행에서 Quantitative Trading Strategist로 일한지 2년차입니다. 제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문제인건 사실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선배님들의 고견을 듣고싶어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졸업 당시에 구글을 포함한 여러 tech회사의 오퍼를 고사하고 투자은행으로 왔습니다. 백그라운드를 따라 트레이딩 시뮬레이터를 제작하며 보조일을 하다가 좋은 상사 덕분에 간단한 High Frequency나 Mid Frequency 트레이딩 전략을 짜서 돌려보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헤지펀드나 프랍은 아니기 때문에 Profit 인센티브는 따로 없습니다.

    2년 가까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 퀀트 트레이딩 쪽에서 괜찮게 성공하는 쪽은 통계 쪽의 천재적인 머리가 있어 그 것을 이용한 알파로 수익을 내거나, 여러가지 시스템과 동향에 밝아서 적절한 전략을 시스템에 버무려서 수익을 내는 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박사도 아니고 수학 통계를 잘 하는 편이지만 천재들과 경쟁은 힘든 듯 하여 후자 쪽을 선택하여서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동료 박사 퀀트들도 리서치 쪽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위 부류 이 외의 일반적인 셀사이드 퀀트들은 월스트릿의 풍토와 다르게 굉장히 편하게 일하고, 적당히 승진도 하고 괜찮은 연봉에 9시-6시 일을하며 work life balance 있게 지내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저는 현재 연봉만 따지면 Tech의 초봉이나 대우에 비해선 꽤 낮은 편이지만 (투자은행 연봉은 VP까지는 거의 레인지가 고정입니다.) 적당히 호봉(?)이 쌓이면 연봉도 높고 꽤나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허나 고민이 있다면, 역시나 주류 트레이딩 전략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통계와 아이디어를 공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머신러닝과 빅데이터, 초단타 전략을 연마하면서 Technical한 것을 열심히 하는 것에 더불어 따로 밤에 통계와 현존하는 전략들을 공부하려니까 힘이 부치고, 성과가 많지 않습니다. 뉴욕의 괜찮은 헤지펀드에 들어가려면 수익률 X를 요구한다던데 현재 그것의 20%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이는 제 커리어를 위한 것이지 현재 은행에서는 제가 하는 데이터분석과 작은 프로젝트들에도 충분히 만족 하고 있습니다.

    방향을 틀어서 머신러닝과 빅데이터에 집중하고 더 빠르고 나은 시뮬레이터 개발에 집중하려 하니 결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더라구요. 이럴 거면 잘 안되는 전략가 때려치고 헤지펀드 프로그래머가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그러던 와중에 구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팀은 제가 위에 말한 관심 분야대로 데이터 분석 쪽입니다. 졸업 당시보다 더 많이 고민되더라구요.

    지인들의 의견은 비록 작고 인센티브 없지만 직접 트레이딩 전략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은데, 좀 더 경험을 하고 엔지니어로 돌아가는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보류하라는 의견과

    어차피 개발 능력과 데이터 분석을 주 무기로 쓸꺼면 미련없이 움직이는게 낫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구글 뿐만 아니라 일반 트레이딩 펌의 개발자 포지션 포함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습니까?

    • 42nd 159.***.71.10

      투자은행에서 퀀트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합니다. 프라이싱 모델을 유지관리하거나 리스크 모델을 유지관리하거나 regulator에게 capital 승인을 받기위한 CCAR, SCAP 관련일을 하거나 Dark Pool과 관련된 electronic trading을 하거나 글쓴님같이 퀀트 트레이딩 전략을 만들고 backtesting하거나 하는일등이 있습니다. 몇년전부터는 CVA관련 퀀트팀도 많이 생겼고 이외에도 IBD나 corporate treasury같은 부서에서도 퀀트팀을 만들어서 운영합니다.

      글쓴님의 퀀트(혹은 strat) role은 제가 알기로 위에서 말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퀀트에게는 어찌보면 동경의 대상이 되는 role입니다. 즉 많은 퀀트들이 기회가 되면 트레이딩 전략을 만드는 일로 잡을 전환을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일단 본인들의 업무분야로 경력이 3년이상 쌓이게 되면 헤드헌터들도 하던일과 밀접한 관련된 일들만 연락이 오게 됩니다. 일부는 이렇게 굳은자가 되기전에 직장/팀을 옮기는데 성공도 하고 나머지는 그냥 본인들이 경력을 쌓아온 분야에 남게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투자은행에서 퀀트들은 그렇게 업무 load가 크지 않고 VP까지 무난히 올라갑니다. 꼭 트레이딩 전략을 하는 퀀트가 아니더라도 뉴욕에서 가족들이 여유롭게 살만큼의 연봉을 받고 잘 지냅니다. 하지만 모든 퀀트들이 그 잡을 잡기까지 치열하게 경쟁하며 자기자신을 채찍질해왔던 사람들이기에 더 좋다고 여겨지는 career path가 보이면 그곳을 향해서 또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이런면에서 저는 솔직히 말하면 구글로 옮기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경험도 많이 쌓지 못했는데 본인이 잘 못하고 있다고 성급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야가 원체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통계학/수학 박사들에 치이다 보니 본인은 그곳에서 비젼이 없다 생각하셨다면 본인도 몇년 경력쌓고 박사과정을 들어가보시는건 어떨런지요? 님 경력이면 아마 인턴 포지션 잡는게 그렇게 힘들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알고 지내는 퀀트 트레이더들 보면 알파를 generation한다는게 매우 어렵다는 말은 자주 합니다. 일도 재미는 있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게 주목적인지라 스트레스가 많고 돈이 잘벌리면 트레이더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지만 돈이 잘 안벌리면 세상에서 제일 안좋은 직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결국 선택은 글쓴님이 하셔야겠지요. 저도 회사에서 월가생활접고 실리콘밸리로 가는 사람을 몇명 보았고 페이스북에서 보면 행복하게 잘 지내는것 같으니 구글 가시는것도 좋은 옵션일테구요. 하여간 건승하시길 빕니다.

    • 지나가다 66.***.93.47

      저도 개인적으로는 2년차에 옮기시기에는 가지고 계신 기회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쓰신글로 봤을때는 퀀트일을 충분히 즐겨서 하시고, 또 잘하시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퀀트에 대한 지식은 없으니까 현실적인 참고가 되실수 있도록 구글 이야기만 잠깐 쓰겠습니다. 일단 일이 많다 많지 않다는 사람마다 부서마다 편차가 큽니다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건 많은 구글 엔지니어들은 (=베이지역 엔지니어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고 성과에 대해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물론 출세하고 싶은 분들은 자신의 선택사항으로 성과에 큰 스트레스를 스스로 주면서 살지요ㅋㅋ)

      창의적으로 일하는 측면에서는 저는 구글 같은 대기업은 상당히 물음표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이 너무 커서 밖에서 흔히 구글하면 떠올리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것 하시려면 x랩 같은데 안가시는 이상은 힘들지 않나 싶어요. 들어오시면 그냥 대기업인데, 그래도 직원들 터치 심하게 안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정도? 요즘은 돈 안되는 프로젝에 대해서는 무지깐깐해요.

      연간수입은 요즘 베이지역에 인재쟁탈전이 일어난 관계로 많이 후하게 주는편이에요. 경력으로 보면 베이스 130-150k언저리에 보너스+주식인데. 사실 베이스야 대부분 회사들이 비슷하구요. 주식은 베이지역 잘나가는 대기업들은 대부분 일 적당히 잘하는 직원들에게 리프레쉬로 매년 100k언저리씩 주는 편입니다. (사인업은 제가 받은지 너무 오래 되서 모르겠네요) 물론 직원들 이직 못하게 하려고 4년 베스팅 같은 방법으로 줍니다. 그래서 한 4년 근속하면 그냥 적당히 일 잘하는 엔지니어도 이것저것 합쳐서 300k 받는 것도 그렇게 불가능하진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스트레스를 -돈 받는것에 비해서는- 무지막지하게 안 받으면서요.

      뭐 이것도 it경기가 훅가면 베이스 이외의 보상들은 걍 없는것이지만요. 하지만 퀀트로 해서 정말 잘나가는 슈퍼스타가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숫자라면 베이지역 주요기업애서 현재 저정도 벌고 있는 슈퍼스타 아닌, 특별한 직책도 없는 엔지니어는 제 주변에도 꽤 많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또 한가지 구글 엔지니어의 장점은 오피스 이동이 상당히 자유롭습니다. 본인이 원하시면 미국이나 세계각지(물론 이 경우는 연봉 삭감이 ㅠㅠ 물론 미국 내에서도 지역따라 연봉이 다릅니다)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퀀트는 지역이 크게 제한되겠죠?

    • BofA 76.***.51.172

      각종 금융규제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앞으로 투자은행에서 트레이더의 입지는 차츰차츰 좁아질 전망입니다.

      Bank of America, Barclays, UBS 등 투자은행에서 요즘 트레이딩 데스크의 규모를 계속 줄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트레이딩 데스크를 하루 아침에 통째로 없애 버리기도 합니다.

      원글자 본인도 Bank of America에서 근무하는 것 같은데, 현재 금융권 상황이 어떤지는 원글자 본인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퀀트 트레이딩을 계속 하고 싶다면 결국 헤지펀드로 가야 하는데, 헤지펀드는 일종의 스타트업하고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리스크도 크고, 사람도 많이 채용하지 않아서 비집고 들어갈 자리도 별로 없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아주 특출나게 뛰어나면 천문학적인 ‘떼돈’을 쓸어 담는 게 가능한데,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게 극히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원글자 본인이 어차피 ‘떼돈’을 벌만한 인물이 아니라면, 차라리 테크 인더스트리가 훨씬 다양하고 많은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 BofA 76.***.51.172

        그래서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제 지인들 보면, 요즘 상당수가 원글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금융권 미래는 불투명한데, 테크 인더스트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 …

        일반적으로 다음의 2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 합니다.

        1. 이미 뉴욕에 정착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하루 아침에 보따리 싸고 실리콘밸리로 이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일단 ‘인더스트리’ 자체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굳이 금융권이나 IT 뿐만 아니라, 모든 인더스트리에 적용 됩니다.

        물론 경력의 일부는 인정 받겠지만, 원글자는 구글에서 대학 갓 졸업한 엔트리 레벨 엔지니어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물론 매니저급으로 스카우트 돼서 가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 171.***.64.10

      좁은 분야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소중한 의견들 감사합니다. 혼자서 생각하기엔 한계가 있었는데 선배님들의 고견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