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지배층은 나중에 내물왕때부터인가 한족에 멸망한 흉노족 김씨 왕자 가족들이 망명해와서 왕권을 빼앗은 거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더라.
그렇더라도 이미 가야는 부여의 북방계가 내려와 (배로 내려왔는지 육로로 내려왔는지는 아직몰라. 주몽 이전의 시기일수도 있고 비슷한 시기일수도 있고.) 정착해있었다고 하더라. 부여와 흉노도 사실 서로 가까운 족속들이고. 다만 한나라 이후에 중국에서 망하여 신라로 망명해서 신라의 지배층으로 흡수된 흉노족 왕자의 경주김씨가 된 가족들은 그 뿌리가 문헌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지. 그런데 이미 아라비아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신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듯 보인다. 그런데 아라비아상인들이 따라온 항해경로상에 타밀국도 존재하는게 가능하거든. 실제로 석가탑인지 석상에 들어있던 유향이 아라비아제품이랴.
근데 왜 그 시기 사람들은 향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했을까…유향, 침향….. 난 유향이 아라비아산 나무 송진인줄 이제야 알았어.
그리고
문헌도 별로 남은게 없고 우리나라 역사라고 하는것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기본으로 하기때문에
삼국간의 언어가 어떤식으로 소통되었는지 조차도 연국하기 힘든가 보드라. 보통은 삼한사람이나 고구려 백제가 모두 부여계와 연관되기 때문에 기본적인 소통은 했다고 보거든. 부여 이전 시대에는 고조선으로 모두 연관되어져 있었고. 근데 그게 확실한 근거가 있는건 아니고….그냥 전쟁중에 서로간에 회담할때 말이 통했다드라 하는 그런 구절들만이 남아있을뿐. 거란족과도 말이 통했다고 하든데? 그러니 타밀족 공주가 시집왔다고 해도 많은 어휘를 신라말에 보탯을거 같진 않고 오히려 그 후세가 단체로 혹시 타밀로 되돌아갔던건 아닐까 추측도 가능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