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박정희 친일 여부 결론
○ 2005년 노무현 정부시절 대통령 직속 기구로 발족했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4년 간의 조사를 마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 2009.11.6.<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친일진상규명위의 핵심관계자는 해당 매체와의 통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많은 논의를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를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친일 조작
○ ′민족문제연구소′가 1939년자 <만주신문> 기사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만주군관학교 합격 발표일자(1939.2.24)와 혈서 관련 기사(3.31)의 순서가 모순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사장 되었다.
○ 즉, 1939.3.29일에 합격을 위해 혈서를 썼다고 보도했으나 박정희가 합격한 군관학교는 1939.2.24일에 이미 합격자 발표를 하였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디지털 복사본만을 공개하며 박정희 혈서설에 대한 갖가지 조작의혹을 받고 있다. 박정희가 소속되어있던 부서명, 년도차이, 만주일보 폐간일 등을 고려하면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족 류연산′씨의 혈서설 주장에 대한 증거는 없다.
○ 만주일보 기사를 소개하면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한 ′다까끼 마사오′ 박정희가 졸업생 대표로 일왕찬양 했다′고 했지만, 실제 기사 내용의 생도대표는 ′아카미 쇼히코′다. 오히려 ′박정희 만주군 소좌′가 독립군을 도왔다는 임시정부 요인의 증언 기록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족 류연산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의뢰한 조선족 류연산씨는 독립군을 토벌하였다며 박정희를 친일파로 주장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해, 검찰이 이메일로 증거를 요청하였을 때 그는,
○ ″어느 중국책에서 관련 내용을 봤으나 책을 구할 수 없고 작가도 죽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 박정희가 1940년까지 문경소학교에서 선생으로 교직생활을 했으며 그에 대한 증거들은 많다. 그러나 좌파들이 주장하는 박정희의 1939년 ′대사하 전투′와 간도조선인 특설부대 입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임시정부 마지막 요인의 증언
○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임시정부 마지막 요인 백강 조경환 선생은 의병정신선양회 활동을 하였다. 백강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힌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유언할 만큼 강직한 인물이다. 그 백강 선생이 말한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다.
○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돼서 한 젊은이가 면목동 집으로 찾아왔는데, 큰절을 하였다. 옆에 동행한 사람이 ′대통령 이십니다′ 하길래 보니 박정희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제가 만주에 있던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일제군내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놀랍고도 반가왔다″.
○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을 보충해야 할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소좌의 도움은 컸다고 한다.
○ 박정희는 1946년 광복군 제 3지대 제 2중대장 자격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