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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이민 행정을 보면, 과거 1990년대 초까지 시행되었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제도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바로 얼마 전 이민국(USCIS)이 미국 내 신분조정(AOS)의 사실상 시행 중단을 발표한 것만 보아도 시계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영주권 수속의 마지막 관문인 ‘신분조정 단계’에 이르면, 미국 내에서 절차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본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거쳐 이민 비자를 발급받은 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미국 내에서의 신분조정(AOS) 제도가 있긴 했으나, 대단히 제한적이고 드물게 적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영주권 대기 기간이 길어지는 와중에 자녀의 나이가 만 21세를 넘겨버리면(Aging-out), 어린 시절 동반가족으로 함께 신청했더라도 무조건 혜택에서 배제되던 냉혹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성인이 된 자녀들은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체류 신분이나 이민 방법을 따로 알아봐야만 했습니다. (이 문제는 2002년이 되어서야 ‘아동신분보호법(CSPA)’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구제책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이민 제도를 현대화하고 수속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1990년 이민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신분조정(AOS)이 대중화되었고, 유학생(F-1)들에게는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체류 신분을 계속 유효하게 인정해 주는 ‘D/S(Duration of Status)’ 제도가 확립되었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 공화당 정부 주도로 이민 행정에 엄청난 파격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완화 조치의 본래 취지는 훌륭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합법적인 비자 체류 시한을 넘겨 고의로 장기 불법 체류를 해놓고도, 시민권자와 결혼한다는 이유만으로 합법화 및 사면을 받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수십 년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법을 지키며 공부하고 일해온 합법 이민자들에게 깊은 박탈감을 안겼고,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0년 12월,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이른바 ‘LIFE 법안’이 통과되면서 역사적인 대규모 구제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2000년 12월 21일 이전에 미국에 입국했고, 2001년 4월 30일 이전에 이민 청원(가족/취업)이나 노동승인서(LC)를 접수했던 사람들에 한해, 설령 체류 신분을 상실했더라도 출국하지 않고 1,000달러의 벌금을 내면 미국 내에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이민법 245(i) 조항’이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서류미비자가 대규모로 구제를 받았습니다.
이후 2008년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민 정책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서 서류미비자가 된 청년들을 구제하기 위해 ‘추방유예(DACA)’ 제도를 시행하는 등 포용 정책을 펼쳤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바마 정부는 내부적으로 역대 가장 많은 불법체류자를 추방한 정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완화된 이민 기조와 난민 수용 정책 등은 합법적으로 어렵게 정착한 이민자들과 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샀고, 이는 결국 ‘미국 우선주의’와 ‘국경 장벽’을 전면에 내세운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트럼프 1기 정부는 대대적인 단속과 이민 행정의 대대적인 재정비를 통해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하지만 시계추는 다시 움직여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하게 됩니다. 바이든 정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 등 난민국의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남부 국경의 고삐를 다소 헐겁게 풀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부 국경을 통해 통제되지 않은 수백만 명의 서류미비자가 폭발적으로 유입되었고, 이들 중 일부가 저지른 강력 범죄와 사회적 비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 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국경 통제 실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민심을 다시 돌려놓았고, 지금의 강력한 반(反)이민 기조를 외치는 ‘트럼프 2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가 돌고 돌듯이 미국의 이민사 역시 개방과 통제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돌고 돕니다. 어쩌면 지금의 엄격해진 이민 장벽은 과거 완화된 제도의 혜택을 악용하거나, 주어진 기회를 방만하게 다루었던 이들이 자초한 ‘자업자득’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국가가 선의로 베푼 편의와 관용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떤 비극적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인구나 범죄율 같은 단순 통계로 보면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주류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전체 숫자는 인도나 중국, 남미계에 비해 적을지 몰라도, 일부 한인들이 미국 이민법의 빈틈을 노려 행해온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편법 행위’들은 이미 이민국(USCIS)의 집중 표적이 된 지 오래입니다.
허위 서류를 통한 영주권 신청, 유령 학교를 이용한 무늬만 유학생 신분 유지, 위장 결혼 등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안일한 꼼수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한인 사회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었습니다. 법을 우습게 여기는 일부의 일탈이, 결국 법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선량한 한인들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더 이상의 편법과 불법은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무관용 원칙이 지배하는 트럼프 2기 이민 행정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바로 ‘어떻게든 샛길이 있겠지’라는 안일한 독버섯 같은 생각입니다. 규칙을 지키는 것만이 잔인하게 얼어붙은 이민 장벽을 넘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