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였던 나

  • #3555994
    칼있으마 73.***.151.16 349

    남 과걸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너.

    를 볼 때마다

    남 뒬 캐
    뭔가 약점을 잡아내고야 말았다며
    달짝지근한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처럼 느껴져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부류로

    널 치불 하는데,

    내가 어디로 봐서
    산삼처럼 느껴질까?

    날 캐고 싶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닌지

    캐러다니는 사람이 많더라고

    누군가 알려줬던 터라

    숨긴다고 숨겨질 것도 아니요,
    발겨진다고 팔릴 쪽도 없으니

    그래,
    불쌍한 너에게 적선도 할 겸
    이참에 아예 스스로 날 까자.
    .
    .
    .
    .
    .
    의외라고
    믿을 수 없다 싶지 싶겠지만 난

    언론인

    출신이다.

    당시 대표 조간으로 불리웠던
    조중동 중
    동아일보에 몸을 담고 있었다.

    입살 할 땐 사실 맘이 썩 내키진 않았다.

    내 실력,
    너도 감은 잡고 있겠지만

    출중하잖냐.

    해 조중동
    세 군데 공채에 동시에 다 합격을 했지만

    동아일볼 택한 건 순전히 쩐,
    거에 맘이 흔들려서였다.

    초심은
    강건하고 경건하기로 했다.

    청렴하고 양심있는

    언론인

    이 되자.

    내 양심만 지켜낸다면야
    환경인들 뭔 문젤 게 있겠느냐.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신감이란 게
    태어나 처음으로 따라 붙는 순간였다.

    입사 전
    회사에 대해 사전 지식이 충만해야
    회사에 기본 옐 갖춤이라 여겨

    김성수
    김연수

    형제의 자서전도 읽었고
    그들의 친일 행각에 혈 털기도 했었다.

    관련사 삼양사를 털면서

    일제시대에 이미 일제와 짜고
    국내 최초로 고창 앞바달 막아 간척지를 만든다음

    간척지를 둘로 쪼개

    반은 끝도 없지 싶은 삼양염전과
    그 옆으로 반은
    지구가 넓단 걸 증명해 보이고 있는 평야,

    염전노예를 국내 최초로 공채했고

    평야의 논을 소작을 주면서
    소작농들은 농살 지어도 지어도
    쌀빚더밀 헤어나오지 못하게 계약 조건을 만들어 놓곤

    그들의 피와 살과 쌀과 삶을 뽑아
    부를 축적했던 그 형제가 갈라지면서

    김연수는 삼양사를
    김성수는 고대와 동아일볼 나눠 갖게 되는데.

    친일파들에겐 가산점을 이빠이 주는

    뿌리부터 친일파

    들의 등용문였던

    승마니정권

    외압은 절대로 하나도 없이
    물론 특혜도 전혀 없이

    자진하여 사과박슬 상납하여
    승마니의 사랑을 듬뿍 받곤 총리까지 지낸

    김성수가

    위대한 친일정신

    을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고취시키고
    걸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고대와 동아일볼 키워
    오늘에 이르렀으니

    오라고 붙드는데도
    고대 안 간 건 탁월히 잘 한 일이고

    동아일본 볼 일이 없다 했는데

    아, 쓰바.

    내가.

    그 드런 동아일보에 발을 들여

    언론인,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될 줄야.

    이렇게 꼭 살아야 되나
    자괴감도 들었지만

    양심을 걸고
    양심있는 언론인으로
    양심 하나에 내 인생의 승부를 걸자.
    .
    .
    .
    .
    .
    선생님,
    제가 이번에 동아일보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말씀 부탁 드려도 될까요?

    국어선생님과의 차 한 잔의 대화에서
    선생님께선 지도 한 수를 내게 하사하셨는데

    “글을 쓸 땐
    손이 아니라
    네 영혼을 움직인다 생각하고 써라.

    지나치게 꾸미려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특징 하나 없이 너무 평범해서도 못쓴다.
    가장 너 다운 걸 찾아라.”

    그 때 깨달은 거다.

    실력은 없으니 남들처럼은 못 쓰고

    그래,
    가장 나 다운 것.

    내용도 없이
    가늘고 길게 내려쓰기를 하자.
    .
    .
    .
    .
    .
    요단강 뱃사공 색휘의 독촉에 시달리다시달리다

    연체좀 하자.

    사정하며 뇌물까지 줬는데

    자꾸 색휘가 날 데리러 오는 건지
    뇌물을 더 달란 건지
    새벽마다 잠을 훼방한다.

    동창이 밝았길래
    한 대 빨까곤 나갔더니

    다급한 소리를 내는 차 한 대가
    이 집 저 집을 휘젓고 다니며
    비닐 봉지에 싼 신문을 돌리고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과거 언론인였던 시절이 떠오르는데

    그래 그 때가 좋았지.
    암 좋았었지.

    새벽에 일어나

    동아일보를 배달하던

    중 1.

    신문을 돌리던 소년 칼있으마.

    그 땐 참
    맑고 순수했었지.~~~

    • 허허 174.***.85.127

      정신병자

    • 107.***.229.43

      언제는 설탕가게에서 일했다더니…
      글쓰는 재주로 보니 언론인이 더 맞긴하시것네..

    • 미국노땅 72.***.224.187

      원글 고마해라 니 마이 뭇따아이가

    • 승전상사 98.***.109.5

      재밌네요. 미국에는 오히려 어릴 때 신문배달 했던 사람들이 많죠. 우리나라에선 가난하고 힘들어서 애들이 일했지만, 미국서는 자기 용돈 벌려고 자전거 타고 다니며 그런 일을 많이 했답니다. 오래 하면 목돈을 모아서 고물 차도 사고 그랬다는데. 요즘은 그런 일거리는 없죠. 요즘은 애들이 일을 하려고 해도 가게에서 단순 노동하는 거라서, 나이가 좀 더 들어야 가능하죠. 미국도 애들이 무슨 활동이다 뭐다로 바쁘고, 부모들이 쫓아다니며 챙겨줘야 하고, 스스로 뭔가 하는게 옛날보다 훨씬 줄어든 느낌입니다.

    • 칼루이스 209.***.191.254

      오늘 글에는 마지막에 반전이 있어서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