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루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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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자루와 돈자루 —옛날 이야기

옛날에 돈 많은 부자 양반과
그 집에 머슴 사는 총각이 있었다.

부자는 돈 모으는걸 낙으로 삼고
커다란 자루에 돈을 넣어 두고 허구한 날 돈만 들여다보고 살았다.

돈자루에 돈이 점점 불어 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입만 떨어지면「돈,돈」 하고 눈만 떨어지면 돈자루부터 찾고,

행여 누가 훔쳐 갈세라 잘 때도 돈
자루를 베고 자고, 이러면서 살았다.

이렇게 돈,돈 하면서 사니까 자연히 인색할 수 밖에 없다.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별의별 짓을 다한다.

머슴에게 밥을 준다는 것이 쌀이 아까우니까
강냉이로 떡을 만들어 주는데, 그것도 많이나 주나.

하루에 딱 세 개,
아침에 하나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씩 주고 만다.

더러 머슴이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는 날에는 그나마 안 준다.

​이러니 머슴은 강냉이떡에
목을 매고 그저 그것 아니면 죽는 줄 알고 살았다.

부자가 돈 모으는 것처럼 강냉이떡을 모으는데,
끼니때마다 떡부스러기 떨어지는 것을 주워서
볕에 바짝 말려 가지고 자루에다 넣어 뒀다.

​부자가 그러는 것처럼 잘 때도 떡자루를 끼고 자고,
눈만 떨어지면 떡자루를 들여다보면서
자루에 떡부스러기가 점점 모이는 걸 낙으로 삼고 살았다.

부자는 머슴이 떡부스러기를 모으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비웃기를,

이 어리석은 놈아,
그깟 떡부스러기를 모아서 어디에 쓰겠다는 거냐?
그것 한 자루 다 채워야 돈 한푼만 하겠느냐?』 한다.
그러나마나 머슴은 떡부스러기를 모아서 한 자루를 다 채웠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비가 참 많이 왔다.
많이 와도 이만 저만 온 게 아니고
아주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왔다.

한 달 이레를 내리 비가 쏟아 붓는데,
처음에는 논밭이 물에 잠기더니 다음
에는 길이 잠기고 그 다음에는 집이 물에 잠겼다.

​이렇게 되니 온 동네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피난을 갔다.

물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집을 떠메고 갈 수가 있나?

​집집마다 제일 귀한 것
하나씩만 메고 지고 갔다.

​부자와 머슴도 피난을 갔는데,
부자는 돈자루가 제일 귀하니까 돈자루를 짊어지고 가고,
머슴은 떡자루가 제일 귀하니까 떡자루를 짊어지고 갔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물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그대로다.
그러니 당장 급한 게 먹을 것이다.

머슴은 떡자루에서 떡부스러기를
한 줌씩 꺼내어 맛나게 먹는데,

부자는 돈자루에서 돈을 꺼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딱하기만 하다.

​부자는 머슴 옆에 앉아서
떡부스러기를 한 줌 나누어 주기를 기다렸지마는,
머슴이란 놈은 주인이 배를 곯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 혼자만 먹는단 말이야.

​그것 좀 달라고 하자니 주인 체면이 깎일 것 같고,
그래서 배고픈 걸 참고 견뎠다.

​그런데 한 닷새 지나니까
부자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하고 눈앞이
흐릿흐릿해 지는데, 이러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단 말이지.

옆에서는 머슴이 떡자루를 끼고 앉아
떡부스러기를「얌냠」소리까지 내어
가며 먹는데, 그걸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이 지경이 되면 체면이고 뭐고 차릴 것이 없다.
실없는 웃음까지 슬슬 흘려 가며 머슴한테 빌붙었다.

얘, 그 떡부스러기 한 줌만 다오』
그랬더니 머슴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한다는 소리가,

​아, 영감님 같은 양반님도 이런 걸 다 잡수십니까요?
이런 것은 천한 우리나 먹는 줄 알았는데요
하고는 줄 생각을 않는다.
양반이라고 못 먹는 것이 있다더냐? 그러지 말고 좀 다오.

내 떡값으로 돈 닷 푼을 주마
그래도 머슴은 줄 생각을 않는다.

돈이 적어서 그러는 게로구나.
옛다, 한 냥을 주마. 떡부스러기 한 줌에
돈 한 냥이면 그게 어디 적은 돈이냐?

그래도 머슴은 거들떠볼 요량조차 하지 않는다.
좋다, 좋아. 내 큰맘 먹고 닷 냥을 주마

그래도 머슴은 못 들은 척,
떡부스러기만 얌냠 먹고 있다.

그러면 열 냥이면 되겠느냐?』
그래도 묵묵부답.
그러면 오십 냥. 논 한 마지기 값이다
그래도 묵묵.

그러면 백 냥
그러면 천 냥 그래도 대답이 없다.

천 냥을 준다는 데도 싫다니
무슨 방도가 있나. 할 수 없이 쫄쫄 굶으며 온 하루를 더 보냈다.

그 다음 날이 되니
부자는 참 더는 못 견딜 지경이 되었다.
배는 고플 대로 고파서 창자가 뒤틀리고
눈앞에 헛것이 왔다갔다 하는데,
이러다가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거든.

​그런데 옆에서는 머슴이 입맛까지 다셔 가며
떡부스러기를 얌냠 먹고 있으니 이건 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그래서 부자가 돈자루를 통째로
머슴에게 갖다 안기면서 싹싹 빌었다.
아이구, 얘야.
이 돈자루를 다 줄 테니 제발 그 떡부스러기 한줌만 다오
그제야 머슴이 못 이기는 척
돈자루를 받고 떡부스러기를 집어 주더래.

​제 입으로 돈 한푼보다 못하다고
한 떡부스러기 한줌하고 바꾼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