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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알고 지내는 한국대학 교수의 기러기 가족은 얼마전 모두 영주권을 받은모양이다. 내 자신이 미국 직장에 다니면서 영주권 받는데에만 6년이 걸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라, 어떻게 한국대학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교수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주권을 취득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NIW방식으로 받았다고 하기에 그 방법적 과정은 얼추 상상이 가는 바이지만, 내 경우에 비추어 여전히 잘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의 영주권 취득과정처럼 미국에 온가족이 H1B비자와 H4비자로 들어와 살면서 미국직장을 다니고 미국에 세금을 내면서, 미국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6년에 걸쳐 겨우겨우 받았는데, 한국에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도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 미국영주권을 받아내는 것을 보면, NIW는 내가 받았던 영주권하고는 달라도 많이 다른 모양이다. 영주권의 미국식 이름이 Permanent Resident로 기억하고 있는데, NIW는 더이상 이 미국식이름의 의미를 담고있지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 영원히 거주하는게 아니라, 미국에 영원히 거주할 의향만 미국 이민국에 어필한다면 영주권 취득이 가능한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친구녀석과 전화통화중에도 그 녀석도 영주권 수속을 하고 있다고 했고, 그 녀석 주변의 적지않은 교수들이 NIW방식으로 이미 영주권을 받았거나 받아낸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전해 주었다. 나는 이말을 들으면서 한국인들의 글로발화를 느끼게 되었다.
NIW는 다들 알다시피 National Interest Waiver이다. National Interest에 대한 디테일한 규정이 있겠지만, 상식적으로 미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영주권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대학 교수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영주권 취득열풍을 목격하면서, 미국사회에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졌더라도 미국에 반드시 이민을 나와 살고 싶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도 수여되는게 NIW 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한국대학교수로서 내 주변에서 NIW를 통해 영주권을 받아냈거나 받으려 하는 사람들의 면모는 이번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조국교수의 개인적 삶과 많은 부분 겹쳐 보이고 있다. 소유한 재산은 조국 교수가 보유하고 있는 개인자산정도이거나 그보다 조금 적은규모지만, 일반 한국인들에 비하면 결코 적은 자산규모가 아닌 재산소유와 자녀들은 (자유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의 자녀경우처럼) 외국에 이미 유학보냈거나 한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 보내거나 하는 방식의 삶같은거 말이다. 부인들도 모두 슈퍼우먼들이라서 그런지 모두 조국부인처럼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이와같은 사람들이 미국에 반드시 영주하고픈 욕망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부속품이거나 소유하고픈 가구(furniture)들처럼 취득하고픈게 바로 미국영주권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한편 (On the other hand), 한국대학교수들이 한국인들을 대표하는 그룹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거나 이끌고 있는 리더그룹에 속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글로발화라는게 어떤 방향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더구나, 이번 조국사태를 통해서 드러나버린, 한국지배계급 가족구성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여야 정당 지지자 모두 포함하여) “3 Million 달러 (37억원) 정도의 재산과 자녀들은 다른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울강남 3구 지역에 사는 가족세대“라는 definition을 자주 읽으면서, 왜 내 주변 한국지인들이 저토록 미국 영주권을 필사적으로 취득해왔는지를 짐작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리더그룹이건 한국의 상류층이건 그들은 이미 글로발화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글로발화라는 것은 “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연연해 하지 않는 모습이 전제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달리 말해서, 한국이라는 국가나 사회를 조상대대로 살아온 공간이나 고향과 같은 정서적인 공간으로 여기는게 아니라, 그냥 주거공간 다른곳보다 익숙한 공간에 지나지 않기에 언제든지 필요하면 얼마든지 다른곳으로 철새처럼 이동해서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한국인들의 글로발화를 욕망하는 가장 핵심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들의 자녀가 군복무 의무를 왜 그토록 기피하려고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국을 목숨을 바쳐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토록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을 우습게 생각하고, 그 후손들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지 이해가는 대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이나 중국에 그토록 친화적인지도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한,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글로발화가 정확한 지적이라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제 두가지 부류들의 한국사람들만 남아있게 될까 우려스러워진다.첫번째 부류는 언제드지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떠날 수 있는 사람들과, 두번째 부류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능력이 되지 못하는 부류 (이들은 자신들이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며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 말이다. 한국이라는 사회가 위와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붕괴하지 않고, 여전히 잘도 굴러가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북한사회붕괴를 걱정할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물론 가족 구성원 대다수가 이미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들은 북한붕괴 걱정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