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기적 (1)

  • #307008
    heartwarming 68.***.101.151 2442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기적(2)도 함께 꼭 읽어주세요….읽으시는 분께서도 동참하실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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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08 (23:07:30)

    이 이야기의 시작은 9년전, 그러니까 2000년 12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 당시 저와 제 남편은 아주 가난한 학생이였습니다.
    엘에이 한국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아주 싸구려 아파트의 원배드에서
    남편은 한의대를 다니며 열공을 했고,
    저는 웨스트우드에 있는 UC 계열의 학교를 다니며 하루 하루
    작은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았었죠.

    그러던 어느날 평소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남편이 밥을 먹지 못할정도로
    잇몸이 부었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아팠는데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바보같이 꾹 참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당장 치과에 가서 검사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치과에 가서 견적이란것을 떼어보니 입을 다물수가 없었어요.
    한달 한달 살아가는 저희에게 이천불이 넘는 돈은 너무나도 큰 돈이였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희 남편은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부모님 역시 저희를 도와줄 형편이 안되는것을 알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힘든 얘기는 않하고 살았지만
    아마도 그 날은 제가 마음이 너무 많이 아팠던것 같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계신 엄마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서러워서 울었던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의 전 참 철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저도 딸아이의 엄마로써 만약 제 딸아이가 전화에 대고 우는데
    제가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부모님의 입장이라면 아마 심장이 터졌을것 입니다.
    나름 제 친정엄마도 속상하셨겠지요.
    안봐도 눈에 선하게 제 엄마가 하셨을 행동이 그려집니다.

    며칠후, 엄마가 제게 전화를 하셨더군요.
    겨울방학때 잠깐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제 남편의 치아치료를 어느 분이
    저렴하게 해주실꺼라고 걱정하지말라고 안심을 시키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니 저희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가끔 나오시는 치과 의사 선생님이신데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 하는 엄마가 저희 때문에
    이분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부탁을 드렸던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지만 샌프란의 겨울은 아주 많이 춥습니다.
    입으로 “하”하고 불면 입김이 나오고 뼈가 시릴정도로 안개 바람이 부니까요.
    그날 2000년 12월 25일도 많이 추운날로 기억됩니다.
    아침 일찍 아침을 먹고 나서 침대 이불속에서 안 나오는 저에게
    엄마가 들어오셔서 조금 있다 11시까지 남편하고 치과를 가라고 하더군요.
    그러시면서 봉투 하나를 제게 주셨습니다.
    엄마가 조금씩 모았는데 치료비에 보태서 선생님 드리라구요.
    저희도 준비했다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엄마는 이것 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남편과 덜덜 거리는 차를 끌고 병원 주소를 찾아서 갔습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타라벌스트릿 근처에 있는 이 ㅁ ㄱ 치과 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열기가 가득하더군요.
    분명 저희를 위해 미리 오셔서 힛터를 틀고 기다리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희는 선생님에게 쉬시는날 가족과 함께 계시지도 못하고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려서 미안하다고
    너무나 죄송스럽다고 했습니다.
    단말머리에 정말 온화한 인상 그 자체의 여자 선생님 이셨는데
    괜찮다고 원래 연휴에는 아침먹고 나면 할일이 없다고 그러셨던것 같습니다.

    남편의 치아를 찬찬히 살펴보신 선생님은 샌프란에 오래있으면 치료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혼자말로 하시면서 금세 엘에이로 가야한다고 하니
    급한것만 해주신다고 하시며 다음 방학때에 또 오라고 하시더군요.
    일단 잇몸치료와 살릴수 없는 치아를 하나 제거해주시고는
    치아를 건강하게 하는 법과 치실 그리고 치솔, 치약을 한아름 주셨습니다.

    치료 후 가방에서 첵크북을 꺼내며 속으로, 선생님 제가 엘에이에서 견적 받은거에
    반만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정말 저희 버짓이 그것 밖에 없어요. 하며
    속으로 내내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페이 받으셔야죠. 얼마 드리면 될까요? ” 했더니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선물이예요.” 하시는거예요.
    저희 둘 너무 놀라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집도 샌프란도 아니시라고 들었는데 분명 아침을 부지런지 차려드시고 30분도 넘게 운전해서
    이곳까지 미리오셔서 힛터를 트시고 저희를 기다리신 선생님의 행동을
    차분히 생각해보니 왈칵 눈물이 나더라구요.
    “선생님, 많지는 않지만 받아주세요.” 하고는 엄마가 봉투에 주셨던 캐쉬를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다시 제 가방에 넣어주시며
    “두분다 학생이시잖아요. 원래 학생은 가난한 거예요. 저도 학생이였을때는
    가난해서 도움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그리고 제가 드린 이 선물은 제게 다시
    돌려주시려고 하지 마시고 다른 힘든 분들께 갚으실수 있으실때 나중에 갚으세요.
    어서 가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의 등에 거의 떠밀려 나오듯이 나온 저희 부부는
    차를 타고 친정집에 가는 내내 아무 말없이 돌아왔습니다.
    가슴이 너무 벅차서 무슨 말을 누군가 시작하면 눈물이 쏟아질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날 전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꽉 찬 마음에서 나오는 감동의 눈물이
    무엇인지지 확실히 깨닳은 날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묵묵히 운전을 했고 전 오는 내내 얼굴을 창 밖으로 돌리며
    되도록 이면 제 표정을 남편에게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집까지의 거리는 15분 정도 밖에 안됐지만 그 사이에
    제 머리속과 마음속에 드는 수 많은 생각들…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이 이리도 생생이 기억되는것을 보면
    그날 선생님께서는 저희 마음에 확실히 무엇인가를 심어 놓은신것이 분명 합니다.

    그 날 이후 저희 부부는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난 9년동안 나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던것 같습니다.
    일도 하면서 공부도 했던 남편은 참으로 오랜 시간의 끝에 졸업도 하고
    한의사 라이센스도 땄구요. 하지만 정말 끝없는 그 사람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저로 하여금 많는 불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책과 함께 지낼거면 결혼은 왜 했냐고 난 투명 인간이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고
    남편 몰래 책들을 제 차 트렁크에 숨겨 놓기도 했습니다.
    저도 학생이였지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요.

    작년 이맘때쯔음에는 저희는 인생의 아주 큰 두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조금씩 모아놓은 돈으로
    남편의 첫 클리닉을 열것이냐
    아니면 그냥 좋은 시기를 기다릴 것이냐의 문제 였습니다.
    남이 보기엔 참으로 간단하다고 생각하실수 있겠지만
    이날을 위해서 아끼고 계획하고 준비한 시간이 참으로 길었던 나날이였으니까요.
    그렇다고 경기도 많이 안 좋아서 사람들을 내보내는 시기에
    취직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몇날 며칠을 남편과 상의하다 지금까지 살아온것보다 더 몇배
    열심히 노력하자. 호황일때도 망하는 사람도 있고 전쟁터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 이런 마음으로 두려움반 서레임반으로
    자리를 찾아나섰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많이 끌리는 곳이 웨스트 헐리웃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주인도 큰 회사였는데 너무 편하게 해주었고 프리랜트도 받았습니다.
    최대한의 경비를 줄이기 위해 프리랜트를 받는 동안 저와 남편은
    막노동자가 되었습니다.
    페인트부터 마루까는것까지 기존의 벽을 최대한 살리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둘이서 공사를 했습니다.
    어떤때는 서로 이런말 저런말을 하루 종일 하면서
    어떤때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순노동만 했습니다.
    그때 느낀것이 몸은 참으로 힘든데 반데로 정신은 참 편하고
    맑아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이때 든 생각이 나중에 늙어서 조그만 밭을 갈면서 살아도 좋겠구나
    라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하게 됬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모르는것은 주위분들에게 물어보고 저희가 못하는것들은 현재 빌딩의
    빌딩관리 매니저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이 매니저가 처음엔 저희가 빌딩밖을 페인트할때 많이 웃더라구요. 긋럭이러면서요.
    그런데 며칠동안 지나가며 저희를 유심히 보던 매니저는
    저희가 밖을 다 끝내고 안을 칠하즈음 저희에게 와서 사실 처음 너희들 보고
    둘이서 뭘 할수 있을까 했는데 혹시 페인트로 디그리를 땄냐고 농담을 하더군요.

    그 날 이후로 저희에게 다른 빌딩에 쓰다 남은 페인트며 사소한 장비와 물품들,
    화장실에 들어갈 물건들을 모두 그냥 주면서
    하루는 아예 저희를 데리고 베베리힐스에 있는 이 큰 회사의 창고로 데리고 가
    쓰고 싶은 물건들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지 말고 다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뭐가 필요한 재료들인지 뭘라 우물 쭈물 하고 있는 저희에게 매니저는 오케이 하면서
    이것도 필요할꺼다, 저것도 필요할꺼다 이러면서
    저희 차로 재료와 장비를 한가득 손수 옮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클리닉은 마치 퀼트를 한것 같이 모두 조합입니다.
    가지고 온 페인트의 색상을 이리 저리 조합했고
    마루도 최대한 티 안 나게 창고의 마루 재료를 이용했습니다.
    이분 덕택에 저희가 책정한 공사비가 많이 줄었지요.
    저희에게 아무 댓가없이 사랑을 보여준 또 하나의 분이시기도 합니다.

    거의 두달 반동안 아이 학교 보내고 출근한 곳이 이 공사장이였습니다.
    난감한것이 하루 종일 먼지 뒤집어쓰고 페인트 군데 군데 묻은 옷을 입고
    아이를 곧장 데리러 가면 어린 딸에게 “엄마 지저분해.” 하면서

    저에게 안기려 달려오는것을 막느라 기운이 딸리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어느날 공사하며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는 저 자신도 놀래서
    남편에게 “이런 모습으로 아이를 픽업하러 가면 다른 엄마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하며 시무룩해 했더니 남편이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열정적인 화가 아줌마라고 생각할꺼야. 페인트는 꼭 벽에만 칠하라는 법이 있나?
    그럼 우리 기념으로 이 남은 페인트로 벽에다 그림 하나 그릴까?” 이러면서
    테두리와 선 두개,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더라구요.
    저 웃으면서 “그러자” 이렇게 그려진 그림 2개가 저희 클리닉 복도에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동양화 비스구무리.

    가끔 환자분들이 이 그림 너무 멋있다 누가 그린거냐? 무슨 의미의 그림이냐?
    이런 질문을 하면 저희 남편 씨~익 웃으면서 어는 멋진 여류화가가
    저희를 위해서 특별히 그린거예요. 합니다.

    저희가 3일동안 몇번을 말리고 또 칠하고 말리고 한 간판이 달리던날.
    참으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럴듯한 모습으로 완성된 클리닉.
    저희의 손길도 많이 들어갔지만 오며가며 참으로 여러 분들의
    댓가성 없는 도움으로 완성된 클리닉이였습니다.

    이 작은 클리닉은 작년 12월 중순에 거의 완성이 됐지만
    안의 자잘한 정리와 준비때문에 새해 첫날 오픈날로 잡자 했습니다.
    그냥 2009년의 새해를 새 마음 가짐으로 오픈 할 생각이였습니다.
    12월 내내 커밍순 1월 1일로 써 놓고
    설마 오픈날 그것도 새해 첫날 휴일에 누가 오겠어? 하면서
    아이랑 저랑 남편은 아침을 일찍 챙겨 먹고
    아직 준비가 덜 된 클리닉 정리를 위해 병원에 나가
    셋이서 놀면서 쉬엄 쉬엄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1월 1일 오후 부터 환자분들이 오기 시작하는겁니다.
    너희들 오픈 했지? 하면서 들어오는 환자가 그날만 5명이 되셨네요.
    저희 너무 당황해서 열긴 열었는데 환자 받을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미안하다고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일주일동안 계속 오시는 환자분들.
    저희 남편이랑 저는 상의 끝에 다시 닫자 였습니다.
    챠트니 뭐니 잔정리가 안된 어수선한 상황에서 환자분들을 받을수 없다
    차라리 리오픈으로 2주 있다가 다시 열자 였습니다.

    공사하면서 저희 부부가 나눈 얘기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클리닉 오픈하고 6개월동안 환자 한 분도 없어도
    실망하지 말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리도 저희 부부를 당황하게 하는일이 일어날 줄이야…

    웨스트 헐리웃 동네의 특성상 주위에 방송국도 많고 영화사도 있어서
    80% 이상의 환자분들이 작가나, 프로듀서, 배우들 혹은
    인터테인먼트 분야의 종사자들 입니다.
    물론 아직까진 탑 유명배우들은 아직 못 보았지만
    티비에서 자주 보던 메인 호스트나
    드라마에서 주조연 배우들은 여러번 본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봤던 위기의 주부들 미드 작가도
    잊을만하면 오시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많이 안 좋아지다 보니 인터테이먼트 분야도
    그렇고 그외 많은 다른분들도 타격이 있는것 같더군요.
    특히 일반 환자 분들은
    보험이 있어도 커버가 약해서 보험이 소용이 없는경우,
    아니면 아예 보험이 없으신 분들,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그냥 나가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 치료도 못 받고 “I can’t afford the treatment.”
    이러시면서 그냥 가시는것이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분들에게서 10년 전 엘에이 한 치과 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섰던 저희 부부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 기다림 75.***.82.199

      긴 문장인데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게 뭘까요?
      기적2…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