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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유엔기념공원에서 허시 형제의 합장 안장식이 진행됐다. [부산=송봉근 기자]한국전쟁에 참전한 동생. 그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뒤따라 전쟁터로 따라온 형. 하지만 형은 총상을 입고 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뒀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상시키는 이 이야기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캐나다 허시 형제의 실화다. 이 형제가 61년 만에 유골이 돼 다시 만났다.25일 비가 내리는 부산 남구의 유엔기념공원. 1951년 한국전쟁 중 사망해 이곳에 묻힌 형 조지프 허시(1928~51) 곁에 동생 아치발드 허시(1929~2011)가 나란히 안장됐다.
이들 형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동생 아치발드는 21살이 되던 1950년 9월 7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형 조지프는 동생 걱정에 다니던 철도 회사를 그만두고 이듬해 1월 6일 입대해 동생의 뒤를 따랐다. 형은 동생이 있던 프린세스 패트리셔연대에 배치됐으나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1951년 10월 13일 동생 아치발드는 전우들로부터 허시 성을 쓰는 병사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놀라 달려갔다. 형 조지프가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마지막 숨을 거두던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동생은 형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뒤늦게 참전했다는 사실에 통곡했다.
그 후 형의 유품을 안고 홀로 캐나다로 돌아온 동생은 지난해 6월 숨을 거두며 딸에게 “내가 죽으면 꼭 형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이날 이뤄졌다.
6.25참전으로 미군 약 54,000명이 사망했다. 캐나다군 약 400명 사망.6.25전쟁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달아도 좋지만, 10대후반 20대초의 수많은 외국 젊은이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지키려다 죽어갔다는 사실은 변함없다.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유엔군에 납작 엎드리라는 게 아니다. 다만 고마움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국제사회에 공헌할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한편, 미국의 작은 비이성에 발악하면서 철천지 원수 중국에 침묵하는 사대성을 버려야 한다. 대중이 무현이가 뿌려놓은 쓰레기 반미사상이 아직도 철없는 좌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놓고 있는 것이 한심하다.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 정의내리기를 거부한 이정희 같은 년이 있는 쓰레기 야당, 그 야당을 추종하는 쓰레기 종북좌파들, 수많은 한국인을 학살한 중국의 횡포에 침묵하는 좌파들은 정신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