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나간지 6주째

  • #103403
    오마이 24.***.147.135 3335
    신의 존재

    오래 안 형님이 전도사가 되어서, 형님 얼굴 보고, 작은 교회를 나가게 돼었는데요. 솔직히 전 신의 존재부터 부정하는 사람이자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가서 교회 사람들,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지만, 만나고 그러니 늘 똑같이 사는 삶에서 잠시 벗어난 것 같아서, 재미는 있습니다. 

    예배후 서로 모여서 식사하잖아요. 목사님이 저보고, 교회 나오니 어떻냐고 그래서, 솔직하게 답했죠. 그리고, 설교때 가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도 연관시켜서 해주시니, 제가 듣기에 편하다고. 그런데, 중간중간, 목사님이 하시는 말이 저에겐 이해가 되진 않지만, 목사님, 종교인으로써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저보고 중요한 말을 했다고 (순간, 내가 뭔가 백점 맞은 듯한 기쁨;;;) 하시데요. 일반인이 들으면 이해가 안 가지만, 목사인 자신이 하는 말은 목사이기때문에 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해할려면, 하나님을 만나고 믿어야된다고. 그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되냐니까,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영적 체험을 해야된다고 하더구뇽. 신학대 교수도 영적 체험을 못 한 사람을 많이 봤지만, 자신은 영적 체험을 했으며, 오히려 나이 많으신 할머니 평신도가  영적체험을 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씀하시데요. 영적체험은 공부를 많이 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나중에 곰곰히 목사님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영적 체험을 못 한 신학대 교수는 신앙심이 부족해서 못 한 것인지, 그 할머니의 신앙심이 이 교수의 신앙심보다 높아서 신이 만남을 허락한 것인지. 제가 보기엔, 영적체험이 신앙심보다는, 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설명하는 영적체험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죄가 많음을 알게되고, 모든 세상이 반짝반짝이며  새롭게 보인다고. 또 그 전도사 형의 경운, 하나님이 직접 기도에 응답을 해주시고, 대화를 했다고 하는군요. 종교를 과학으로 설명하는 자체가 무의미 한 것 같습니다. 심신이 힘들고, 뭔가를 너무 갈망하다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영적인 존재자체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그게 내가 말하는 신이란 존재는 아닌지. 
    김수환 추기경도 자신은 하나님을 단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종교적 신앙심의 무게로 볼때,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심이 그 작은 교회의 할머니보다 못 하다고 어느 누구도 말을 못 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 할머니가 믿는 신에 대한 열망이  김수환 추기경보다 못 하다고 말 할  수도 없겠죠. 
    교회를 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존재자체를 인정 할 수 있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게 됐지만, 그들 마음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니, 기독교에 대해 오히려,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이 스스로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신이 있다면, 신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반대로, 나같은 사람에겐 신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 것이겠죠.  신이란 것이 이처럼 주관적인 것임을 알고 나니, 한번쯤은 내 마음속에 신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드네요. 
    • 구 메인프레임 가이 67.***.1.189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만나주십시오. 하나님이 있는데 모르고 있다면 나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조용히 기도해보세요.

    • 배우는이 75.***.202.4

      신이 있던 없던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은 보편 타당성이 있는 진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님께서 신을 믿던 안믿던 간에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대로 행하신다면 그건 곧 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사찰에가서 무너져라 외치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니지요.

      다른쪽에서 보자면 불가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모든게 마음속에 달려 있는 것이겠지요.
      소유욕과 집착을 버리고 타인을 돕는 삶을 산다면 님이 불교신자라 해도
      하느님이 지옥불에 떨어뜨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하느님이라면 전XX이 지금껏 저렇게 29만원 가지고 잘 살게 내버려 두진 않았을 겁니다.

      참고적으로 저는 종교편향없이 다 믿습니다. 교회도 다녀보고 불경도 읽어보고..
      지금은 아무곳에도 다니지 않습니다. ^^;

    • tracer 198.***.38.59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보편타당하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편 타당의 가치관에 맞기 때문에 그러한 것일까요 아니면 신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보편 타당한 것일까요? 예수님이 만약에 우리가 보편 타당한 가치관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셨다면 그것은 틀린말이 되는 것일까요? 예를 들면 노예를 어떻게 부려야 타당한지에 대한 말씀 같은 것의 경우에요.

      사찰에 가서 무너져라 외치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닌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도 역시 우리 인간이 가진 보편타당한 가치관에 역행하기 때문에 신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요?

      신이 될만한 자격을 님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서 부여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 종교논쟁 98.***.227.197

      우리는 종교논쟁에서 이길수 있거나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tracer 198.***.38.59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는 논쟁과 토론은 아무 소용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 종교논쟁 98.***.227.197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는 논쟁도 건설적인 토론이 될 수 있지요.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런데 악착같이 자기의 의견이 맞다는 것을 강요하면서 논쟁에서 이길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토론을 진행하다가 어느 정도에서 서로 이해하고 중단해야 하는데 꼭 마지막에 자기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식으로 끝까지 글을 올리거나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동안 건설적인 토론의 의미가 희석됩니다. 정치공방, 종교논쟁 모두 이런 부류에 속하는 주제입니다. 안하느니만 못한 토론이 되는거지요.

          • tracer 198.***.38.59

            저는 불편할만큼 집요하게 논쟁하지 않고 서로의 다른 의견을 듣는 정도에서 흐지부지 끝내는 논쟁이 오히려 더 건설적이지 못하고 안하느니만 못한 토론이라는생각입니다. 물론 종교논쟁님께서 그런 흐리멍텅한 논쟁을 옹호하시는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인신공격이나 상대의 의견을 들어보려하지 않는 강요스런 태도가 좋지 않다는 데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정치나 종교처럼 우리 속의 깊은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논의에서 과열된 모습이 종종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좀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 74.***.122.233

      성경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확대 해석 하다 보면 이상한 결론에 이릅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십계명에 나오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여기서 네 이웃은 누구를 뜻합니까? 사람이요? 아니죠
      유대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웃은 이웃이 아니었죠.
      정복과 싹슬이의 대상이었죠. 더군다나 그 이웃이 야훼가 아니라
      다른 신을 믿는 사람이면 살려두면 안되는 존재였죠.
      이웃나라에 있는 남녀노소는 물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싸그리
      없에 버리라는 신의 계시를 사울왕이 어기자 예언자 사무엘이
      그의 왕권을 박탈해 버리고 다윗왕에게 다시 왕권을 주어 버립니다.
      이런 마당에 이웃 사랑이 실천이 되겠습니까? 예수가 나타나
      그 이웃이라는 개념을 유대인들이 아닌 인간으로 승화 시켰다고
      하지만 구약 시대의 슴뜩한 사고 방식이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니 기가 찰 일이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성경에서 나왔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면 인간 세상이 그나마
      약육강식의 무스운 세상이 아니라 평화스러운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거죠.. 이건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나라에서 1+1은 2가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1+1은 2죠.

      • 배우는이 75.***.202.4

        헐 님께서 제 답변을 대신 해주셨네요.

        제 짧은 생각에는 예수님 아니었으면 지금의 기독교는 어림도 없지요..
        그냥 유태인들만 믿는 유대교 종교였을겁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예를 들려면 66.***.232.245

        성경->구약->십계명->한구절 이렇게 날로 다운 하시면 좀위험하다고 생각 안하십니까?

        그리고 그 단초를 가지고 마치 성경 전체가 그런양 확대시켜 버리시네요.

        신약의 예수님의 새 계명은 넛징 해버리시고.

        구약은 십계는 단초이며 신약은 완성이라는거 교회 몇번 다녀보면 다 알수 있는 내용인데.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말은 성경에 나와서 권위가 있는것입니다.

        세상의 시스템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진리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기준은 세상 사람들이 정하는게 아닙니다.

        혹시 유교의 핵심 진리중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가 있는지 ref 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불교도 마찬가지구요. 다른 종교에서 하는 ‘좋은말’이라는 소리로 평가절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성인들 중에서 ‘사랑’ 을 대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배우는이 75.***.202.4

          공자명언중 하나.
          내 가르침은 간단하고 그 의미를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그 전부이다.

          불교의 기본도리 – 자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해당됨.)

          글을 올리시기전에 구글링이라도 한번쯤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논쟁 136.***.250.100

            그럼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어떻습니까? 그 당시로는 이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인데 이것 또한 성경에서 떠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인식하는 보편적인 진리라고 보시나요?

          • weqwqe 99.***.92.114

            “내 살과 피를 먹으라” 억? 띠용….어차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시는 인자(사람의 아들),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성인들과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 마약 71.***.4.238

      마약과 종교는 빨리 끊을수록 본인과 이웃에 유익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논쟁 136.***.250.100

      종교 논쟁을 하기 위해서는 신을 믿는 유신론자 혹은 종교인과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들의 논쟁이 될텐데요.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들은 과학적 근거와 논리에 근거하여 신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할 것이고 유신론자 혹은 종교인은 개인적인 체험, 사색, 깨달음 혹은 메시아의 가르침을 근거로 신의 존재를 하겠지요.

      따라서 애당초 해답을 찾을 수 없는 토론이기 때문에 끝을 내기가 힘들고 결국 건설적이지 못한 토론이 될 공산이 크겠지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어디 한번 얘기를 해봐라 내가 그 주장을 반박하지 못하면 믿어 주마… 라는 마음 가짐으로 시작하면 절대 안되고 신이 정말 있겠구나 그럼 신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마음 가짐으로 접근해야 될 것 같습니다.

    • ㅠㅠㅠ 58.***.146.20

      떡밥은 투척 되었도다..
      아프리카에서 굶어죽고 북한에서 굶어죽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신의 구원이…..

    • 하나만 64.***.211.64

      주의 사항:

      1) 기독교 신앙은 무엇보다도 나와 믿음의 대상과의 1:1 관계가 것이 우선. 남들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냥 거기까지임. 흉내내기로 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봐야 되는 것이므로.

      2) 절대로 사람을 믿지 말것.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유혹에 넘어가고 헛소리도 하고 나쁜짓도 하는 똑같은 사람임. 사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사람에게 상처받아 깨지고 떠나는 일이 많음. 살다보면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 보다는 측은하게 느껴짐.

    • 예전에 129.***.190.230

      예전에 오마이님, 교회다닌다나 아니면 하나님 믿는다거나 했던 말했던거 기억날똥 말똥 하는데…
      내기억이 잘못되었나? 겨우 6주 교회나가기시작한 건가요? 그냥 교회만 나가지 말고 이왕이면 성경공부도 한번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심각하게 뭔가 진리나 새 생명을 찾고자 나가는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한 뭔가를 한번 바라고 기도해보시면서 다녀보세요.

    • bn 124.***.35.88

      사람이 생각하는 인격적인 존재(이를테면 착한 일하면 상주고 나쁜 일하면 벌주는)로서의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신이라는 개념 자체도 사람이 만든 것일 뿐입니다.
      단지 사람이 자기 자신을 봐도 욕망과 감정 등에 좌우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기에 그렇지않는
      무언가 완벽하고 전지하고 사람을 초월한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도와주고 힘이 되어달라고 하는) 기도도 신에게 하는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기도입니다.

      • tracer 98.***.201.121

        bn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을 어떻게 아시나요?

      • 논쟁 24.***.209.194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개념이 인간이 만든 것이다라는 것이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라고 봅니다.

        인격적 존재라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고 신이 사랑의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이 사랑이될 수 있겠지요. 만약 신이 수학적 증명에만 집착하는 컴퓨터라면 수학자가 제일 신의 형상에 가까울 테고 신이 재산을 중요시한다면 우리는 재산 늘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기도가 신에게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이 누군인지를 아느냐이지요. 때로 나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힘 같은 것에 자신이 이끌린 적은 없으신지요?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을 때 그게 과연 내가 잘나서 일까요?

        • 어렵습니다 98.***.227.197

          전 부시 대통령은 신암심이 두터웠답니다.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이라크 공격을 결정하고 나서 “이라크의 공격이 미국과 이라크 국민을 위한 길이다.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십시요”라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답니다. 논쟁님이 말씀하시는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행동과 ‘사랑’과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운동선수들도 시합에서 이기면 바로 기도하는 광경을 많이 접합니다. 이기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지만 시합에서 패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보는 경우는 없었지만 만일에 독실한 신자가 시합에서 패하면 뭐라고 기도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특히 기독교를 단순한 구복신앙으로 과소평가하는게 안타깝습니다. 막말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더니 100만불짜리 복권이 당첨됐다면, “와~ 신의 뜻이다. 나는 하느님과 영적교감을 나눴고 하느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하겠냐는 거지요. 죽을 병에 걸려서 고생하는데 살려달라고 기도했더니 병세가 호전되서 결국은 완치됐다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야 되느냐는 겁니다. 이런 행동들이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실천하고는 거리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 논쟁 136.***.250.100

            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면 그런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하는 신앙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가 훌륭한 가르침이 있는 반면 종교 생명을 얻기 위하여 고안해 낸 왜곡된 가르침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지 모릅니다.

            어떤 이는 사후 세계의 보장을 위해서 신을 믿고, 어떤 이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신을 사용합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경기에서 이겼을 때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는 것이고 이것은 곧 자신의 승리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능력이라는 것을 자신과 하느님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경기에서 패할때 더욱 감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패할 때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을 더 돌아보게 되고 더 겸손하게 되지요. 어떤 종교인은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신의 뜻으로 담담히 받아들이지요.

            경기에 졌을 때 왜 불쾌할까요? 그 경기의 실패가 자신의 실패로 동일시하는 자신의 에고 때문이겠지요? 그것을 객관적으로 깨닫게 된다면 경기 승패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