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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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 파워’ 미국은 어디로 갔나. 지금 링 위의 미국에선 챔피언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지 오래다. 강력한 도전자인 러시아와 중국은 때로 경쟁하고 때로 연합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두들기고 조롱하고 있다.

     현재형 격전지는 우크라이나다. 냉전 이후 최대 위기라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미국은 방어에만 급급했다. 그사이 크림반도는 러시아 에 넘어갔고 동부는 풍전등화 신세다. 키예프 임시정부가 14일(현지시간) 관공서를 무단 점령하고 독립을 주장하는 동부 무장세력에게 최후통첩을 했지만 친러 무장세력은 오히려 점거 도시를 10여 곳으로 늘렸다. 러시아는 15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빗발치는 개입 요청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이날 ‘제재 확대’에 합의하는 데 그쳤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탓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러시아가 개입을 중단하지 않으면 치러야 할 대가가 늘 것”이라는 엄포만 놨다. 오바마는 크림 사태 때도 ‘대가’를 경고했지만 결국 십수 명의 경제제재 명단을 발표하는 데 그쳤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돼도 “ 군사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연설원고 담당자였던 데이비드 프룸은 이를 두고 “오바마가 푸틴에게 ‘그린 라이트(통행 허용)’를 켜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앞서 미국의 대러시아 인권법안(마그니츠키법), 러시아의 동성애자 차별법안 등 사안마다 신경전을 벌였던 양국은 에드워드 스노든 전 국가안보국(NSA) 직원 문제로 1차 힘겨루기를 했다. 미국이 스노든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망명 허가를 내줬다. 2차는 시리아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미국은 ‘레드라인(금지선)’ 호언장담을 지키기는커녕 러시아의 중재안 덕에 가까스로 체면을 살렸다. 서방이 주요 8개국(G8) 모임에서 러시아를 빼도 러시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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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러시아와 정면 충돌을 회피하는 것은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에 따른 재정·군사 재배치의 부담 때문이다. 현재 유럽 주둔 미군은 냉전 절정기의 4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6만7000명에 불과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인 유럽 역시 재정위기로 러시아와 맞대결할 여력이 없다. 오히려 얽히고설킨 대러 경제관계가 타격을 받을까 노심초사한다.

     문제는 아시아에서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신형 대국관계 구축을 요구하는 중국은 미국에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표적인 게 지난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중국군 수뇌부의 베이징 설전이다. 양측은 미·중 신형 군사관계 구축이라는 총론에는 합의했지만 각론에서는 정면 충돌했다.

    헤이글 장관이 “미국은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 갈등과 관련해 일본을 보호할 것”이라고 경고하자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은 “영토수호를 위해 군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전쟁 불사론’으로 맞섰다.

     지난주 미 하원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승인하자 중국은 핵 미사일 보복 능력 공개로 맞섰다. 대만 언론은 14일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중국의 핵 미사일이 2006년 20기에서 최근 40기로 늘었고 2020년에는 100기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23일 일본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도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지지하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 무력 시위에 경고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중국은 대미 연합까지 구축할 기세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해온 유럽은 차제에 에너지 수입원 다원화를 구상 중이다. 이를 의식한 듯 푸틴 대통령이 다음달 중국 방문 때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유럽이 천연가스 수입을 줄인다 해도 중국 시장을 통해 수출 타격을 줄일 속셈이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서울=강혜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