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직장생활윤리와 한계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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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일을 한치도 빈틈없이 수행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오로지 자신의 사명에만 전념하게 만드는 감정들이 필요하다. 전문성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 일에 대한 만족감, 물질과 시간의 낭비에 대한 혐오 등과 같은 감정이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사랑, 증오, 공포, 분노와 같은 감정들은 시장경제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것들로 지목되어 배척당한다”

    위의 내용은, 김창훈이라는 민족미래연구실장이라는 분이 신문칼럼에서 유명한 영국소설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서평을 하면서, 주인공 크루소의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으로 한 이야기다. 덧붙여, 이와같은 마음가짐은 제국주의적이라고 한다. 크루소에게는 남성다운 독립심, 무의식적 잔인성, 불요불굴의 집요함, 느리지만 효율적인 지성, 성적 무감각증, 계산적인 과묵함 등 전적으로 앵글로-색슨족 특유의 제국주의적 기상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루소의 위와같은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는 내가 지난 30여년 직장생활 헤오면서 유지하려 했던 (실제로는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오던) 직장윤리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내 나름대로의 직장윤리가 “제국주의적”이라니….

    김창훈씨는 이러한 윤리적 감정을 ‘배후감정’이라고 칭하면서, 감정으로 인식되지 않는 은폐된 감정을 “배후의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밑바탕인 도구적 합리성은 비인격적 상품, 개인의 이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추구하는 배후의 감정이 없다면 작동하지 않는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후감정을 잘 갖추고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부자로서 (자본가로서)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 30여년끝에 변변한 재산하나 이루어놓은게 없는 입장에서 나는 실패자나 다름없으니, 위의 배후감정을 지니며 살아가는데 실패했다는 증거이며, 제국주의적 직장윤리 또한 제대로 지켜나가지 못한 루저인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 있다. 이와같은 실패자인 나는 그다지 우울하거나 좌절된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했다면 한이 맺히지 않을 지언정 우울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무덤덤 하다는 것이다. 철딱서니 없는 요즈음 젋은사람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비록 위의 제국주의적인 배후감정을 나의 개인적 직장윤리로 삼아왔지만, 그것을 승인했기에 직장윤리로 삼아온게 아니라,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의 윤리로 받아 들였을뿐 (마치 로마에서 살아남으려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생존을 넘어 부자까지 되려 한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결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부자는 아니지만, 나는 직장을 30여년 가까지 다녀왔으니, 나의 제국주의적인 직장윤리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온 셈이다 (말하고 보니, 정신승리인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평소 좋아했던 소설가 한명의 부고를 어제 들었다. 올해 나이 88세였던 토니 모리슨이라는 미국 흑인여성 소설가인데, 미국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racism과 slavery에 관한 뛰어난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는데, 그중에서 내게 가장 감명을 주었던 소설은 “자비”라는 소설이다. 이민자 출신 노동자들인 우리 대다수는 제 아무리 스스로 부인하려들거나 자신을 미국본토 백인들과 동일시하려고 해도, 팩트상 21세기 버젼식 racism과 slavery적인 경험을 (멀고도 먼 영주권 프로세스같은 경험들) 전면적으로 부인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삶을 겪어내고 있는지 깊게 통찰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나는 토니 모리슨의 책들을 권유하고 싶다. 물론 이런 통찰없이도 미국삶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여튼, 뉴욕타임즈는 토니 모리슨을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요즈음 관심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바로 “한계를 뛰어넘는“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적 직장윤리로 지난 30여년을 그럭저럭 생존해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발판삼아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해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다행히 다니고 있는 직장엔 정년도 없고, 80대 노인들도 눈에 쉽게 띄는 직장이다. 흑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중적 한계를 돌파해낸 토니 모리슨이라는 사람처럼, 외노자로 미국에 건너와 남아있는 가능한 직장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한계를 돌파해내는 삶”을 살아갈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저녁이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생각해낸 한계돌파는 “Being Ageless”이다. 적어도 정신적인 부분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