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96.67=100”
+++ 하나, Toastmasters Club President로서 지역에서 선봉이 될 수 있었던 경험담 요약 +++
Historic Toastmasters Club President로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이메일로 Officer들의 역할을 확실 하게 Remind 시키고 1월 부터 6월까지의 행사 그리고 각종 Contest와 가장 중요한 Officer Training에 관한 중요성의 강조 였습니다.
그리고 워드화일로 각 Officer 들의 목표와 안건을 위의 사진의 예와같이 하나 하나 그들이 스스로 목표를 정리하게하여 그들이 잡은 목표가 주어진 시간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미팅때마다 간단한 연설을 통하여 계속 Encourge 시켰습니다.
Officer들이 의지를 가지고 바로 서면 Club은 반드시 폭발적인 제 2의 르네상스를 맞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다음과 같은 일들을 예전에 클럽내에서 시행되다 흐지 부지 된 것들을 포함하여 새롭게 진행시켜 나갔습니다. 앞으로 Toastmasters에서 Officer로 리더쉽을 발휘 할 기회가 있으신 분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1. Officer Induction을 Division Governor를 초대하여 더욱 Official하게 치룸. Governor도 초대를 받고 오니 정장으로 참석하여 좋은 연설로 Officer들을 격려하고 회원들 앞에서, 한 명 한 명 지휘봉을 잡으면서 선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각 임무에 대한 확실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는 나중에 100%의 Officer Training 참석과 각종 Contest에도 모두가 단합하여 우루루 몰려다니는 Teamwork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2. Officer 들의 앞으로 6개월간의 목표를 근거로, 파워포인트를 준비하여 취임초기 약 12분간 회원들 앞에서 저의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연설로 발표하여 회원들에게 새로운 Officer들이 어떤 목표와 계획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공표하였습니다.
3. Member Survey를 실시하여 클럽미팅장소, 아침식사, 그외 미팅에서 개선 할 내용, 각종 건의 사항, 교육 및 리더쉽 그리고 Mentoring프로그램의 발전 등에 관한 의견 및 정보를 모았고 이를 차후에 다시 발표하여 Officer들이 발로 뛰고 있는 모습을 회원들에게 주기적으로 상기 시켰습니다.
4. Offcier 미팅을 반드시 한 달에 한 번씩 가짐으로써 목표점검과 각각의 리더쉽의 발전을 서로 나누고 의견을 나누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녁때에 따로 만나는 시간이었지만 거의 100%의 참석율을 보였음음 물론입니다.
5. Contest에 나가는 회원을 격려하기 위해 미리 미리 그 일정을 공표하여 정말 저희 클럽회원들이 “
우루루” 몰려가 회원을 환호하며 응원하고 Contest가 끝나고 나서는 Red Robins과 같은 레스토랑 으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President’s Tradition”(?) 만들어 나갔습니다. 즉, “회장이 오늘 쏜다….”미국사람들 의외로 회장이 쏘는 것 굉장히 좋아하고 정말 밤 늦게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돈독한 시간들이었습니다.
6. 오래된 낡은 트로피를 모두 과감히 버리고, Toastmasters International에서 살 수 있는 가장 멋진 은빛 트로피 세개를 클럽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반짝이는 은색상판과 함께 Officer들의 의견을 통과하여 구매하였습니다. 그리자 Best Speaker들를 뽑을 때에 정말 트로피를 받는 회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일주일간 다음 미팅때까지 그것을 각자 회사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는 것으로 약속하여 사람들이 정말 이 클럽에 나가는 것 그리고 매주 성취해나가는 그 성취감과 자부심을 최대화 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매주 Speech 거의 전쟁처럼 경쟁의 불꽃이 튀곤 했습니다. 즉, Encouragement 와 Competition의 극대화.
7. 10개의 연설을 마쳐야 첫 CTM (Competent Toastmasters) Certificate을 받지만 이는 거의 일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새로이 Half CTM 제도를 만들어, 즉 다섯개의 연설만 마쳐도 굉장한 Celebration을 해서 회원들이 남은 5가지 목표를 잘 마칠 수 있도록 Encourage 했습니다. 물론 트로피와 커다란 리본과 함께…
8. Yahoo Group을 통해서 모든 Communication을 했는데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 각종 행사 사진과 각 Officer들의 화일들을 그들이 나중에 평멤버로 돌아가도 다른 멤버들이 참고 할 수 있도록 데이타베이스화 해 나갔습니다.
9. 야유회와 그리고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옥션 및 도네이션 미팅 등을 열어서 외부활동도 넓혀 나갔습니다.
10. 클럽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Non-Profit Organization으로 등록하여 차후의 IRS에 관련될 문제의 소지를 모두 없앴습니다.
이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6개월 뒤 새로운 Officer가 선출되는 시간이 돌아왔을 때 위의 사진에 올라온 차기 회장의 연설에 회원모두가 설득당해(?) 투표도 없이 만장일치로 연임되는 민주주의 투표제도가 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위의 일들을 발전시켜 Distinguished 클럽으로 선출되었고 회원수는 거의 두배로 늘어나면서, 지역의 선봉이되는 클럽으로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이 할 수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회원들로 미팅이 호텔레스토랑에서 자리가 부족해지는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렇게 일년동안 연임하고 다시 한 번 6개월 더 연임해달라는 부탁이 있었지만 그 해 12월 말 회원들 앞에서 간략하게 고별연설을 했습니다. 이미 도전 할 새직장의 오퍼를 받았고 다음해 1월 2일부터 새로이 멀리 Commute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그 클럽을 많은 환송을 받으면서 떠났습니다.
그 클럽에서 3년이 넘는 시간이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 둘, Toastmasters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얻게 된 또다른 도전들 +++
Toastmasters를 통하여 자신감을 얻은 것을 토대로 회사에서는 동시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몇개월에 한 번씩 프로젝트 관련 세미나를 공표하여 President로 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 까지 모두 Conference에 모아놓고 부족한 영어나마 그들에게Speech를 했습니다 (Project 관련 Seminar).
처음에는 그 누구도 하지 않던 것이라 , 자원해서 Seminar를 여는 신입사원의 이러한 당돌한 이메일에 사람들이 많이 당황해 했지만, 클럽에서의 *망신에 비하면 어쩌면 이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저의 클럽에서 받은 에너지(Passion)의 작은 분출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Toastmasters에서 계속 연마했던 PowerPoint로 한국사람의 손재주와 진정한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줬습니다.
그러한 발표가 그 회사를 나오기 까지 12회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이때 발표했던 세미나자료들이 또 다른 도전시 결정적인(!) 포트폴리오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목표중에 하나였던 Management로의 Career Path를 Native Speaker들 보다 평균 6년정도 단축할 수 있었던 계기는 그들을 Lead해서 끊임없이 발표하고 가르칠 수 있었던 Toastmasters에서의 경험 때문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너무나 너무나 많은 *망신을 당했기에, 나중에는 그 누가 와도 그 누구 앞에 있어도, 때로는 질문을 전혀 못 알아들어도 여유있게 알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되물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은 저의 큰 자산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에 근거한 글이 혹시라도 마치 영웅담으로 오해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전혀 모르는 PEs가 영웅담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포장하여 드러낼 이유가 전혀 없겠지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에게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유학와서 처음 느꼈던 그 좌절감들 그리고 클럽에서 대부분이 백인이고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느꼈던 수많은 좌절과 낙심 그리고 이를 통해 결심 할 수 있었던 어느 날의 그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셋, 이민자로서의 도전과 그에 대한 단상 +++
저는, 한국사람 미국사람…Non-Native Speaker 그리고 Native Speaker 모두 그 누구나 200이라는 숫자를 공평하게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즉 처음의 100은 순수한 “영어실력” 그리고 나머지 100은 순수한 “삶의 열정” 입니다.
이 두 숫자를 합친 200 중 100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는 어떠한 상황에도 미국사회에서 선전할 수 있고 그 에 더하여 사람들을 Lead 해 나갈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이제 그 5년여간의 험난하지만 그 행복했던 Toastmasters의 영어연설 도전을 통하여 저는 이제 “영어”에서 가까스로 3.33을 얻어 냈습니다. Non-Native Speaker로서 어쩔 수 없는 아직도 한참을 더 도전해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음과 같은 확신이 생겼습니다.
“삶의 열정”에서 만큼은 Native Speaker들 조차도 50을 넘기기 힘들어 할 때 저는 96.67있기에 저는 감히 다음의 공식을 Native Speaker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3.33+96.67=100”
미국에서의 삶….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직장 내에서 유일한 한국인 아니 아시안으로서 매일 매일 힘들고 외롭고 때로는 저를 제외한 100% Native Speaker들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미팅에서 정말 순간 순간 두려울 때도 많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그리고 또 일어서면 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또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그 누가 웃건 그 누가 이해를 못하건 그것이 더이상 저희 Non-Native Speaker들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Native Speaker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존중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제가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임을 당당해 하고 또 Non-Native Speaker로서 그들앞에 당당히 서서 그들에게 Eye Contact을 자신있게 하나 하나 날릴 수 있을 때였습니다.
영어의 장벽을 넘어 또 문화적 차이를 넘어 그리고 나 자신의 “안된다는” 그 무의식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는, 내가 나 스스로를 단순히 수많은 이민자 중 하나가 아닌, “자랑스러운 한국인” 그리고 Non-Native Speaker로서의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그 자체를 “자랑스러워하고” 영어를 두려워 하지 않을 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부족한 경험이고 뒤돌아 보면 보람보다는 어찌보면 아쉬움이 더 많은 경험담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경험담이 처음 글을 올렸을 때의 그 생각처럼, 뒤를 따라오는 그리고 삶의 각지에서 같이 나아가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스스로의 발전의 신성함”을 한국인으로서 느끼며 , 자리매김해 나가고 계시는 소중한 이웃들에게, 먼저 걸어간 작은 발자욱으로 남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어찌보면 독도의 영유권과 주권사태에 관련된 이 시대에, 우리 각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가져나아가야 할 할 진정한 “Big Picture”이자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 줘야할 진정한 “비젼과 힘” 이라 확신 해 봅니다.
다음의 “영어 완전정복”시리즈의 마지막 글은 “닮아가는”이라는 제목으로 “영어완전 정복”이 왜 “영어선생되기”인지 그 의미를 간단히 에필로그 형식으로 나누며 끝맺겠습니다.
지난 글 모음은 다음 블로그에서 “영어 그 지경을 넓히며” Label로 올려 놓았습니다. http://gtg2020.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