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친일넘어 일본국의 忠臣 충일주의자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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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일우파 119.***.217.3 3112

    “안중근=’테러리스트’, 정신대=’창녀’…너희는?”

    [홍성태의 ‘세상 읽기’] 빨갱이 병 환자의 역사 죽이기

    이명박 세력이 강행하는 ‘역사 바로 눕히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식민과 독재의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또 다시 빨갱이 병을 널리 퍼트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찍이 공자가 가르쳤듯이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사람의 참됨을 판단해야 한다.
    이명박 세력은 ‘좌편향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뻘 좀비들이 보여주고 있는 그 실체는 무엇인가? 식민의 역사를 발전의 역사로 미화하고,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왜곡하고, 정신대 여성들을 ‘자발적 창녀’로 모욕하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를 극구 찬양하고, 이에 맞서서 민주화와 고성장을 이룩한 시민의 힘을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다.

     

    박정희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친일파 독재자였던 박정희의 친일 행적이 과연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살펴보자.

    박정희는 대구사범 교사로 재직하면서 성공이 보장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으나
    나이 제한에 걸려서,만주중앙군관학교에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보내고 만주 일보에
    대서특필이 된 후에 입학한다.

    박장희가 육사에 가고 싶었고,만주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긴 칼차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아직도 어른들이 아이들이 잘못하면 칼 찬 순사가 너 잡으러 온다는 이야길 하는 것을 안다.
    긴칼은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억압하고 수탈하는 일본의 무력 통치를 의미하는데,박정희도 그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 혈서까지 쓰면서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 편입의 특혜를 받으며 일본 육사를 졸업하는데,그 전에 만주군관학교의
    예비 졸업식에서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한다.

    대동아 공영권과 성전은 오로지 일본의 광기 어린 전쟁이었고,그 전쟁으로 조선은 수탈과 강제징용
    그리고 위안부로 수많은 조선 처자들이 일본군에 끌려가는 전쟁이었다.박정희는 이런 전쟁을 위해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던 인물이다.

    만주군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박정희의 주요 근무지는 간도 지방 독립군의 이동 지역과 항일 투쟁의
    격전지로 불리는 만주 열하지역이었다.박정희의 항일 토벌 경력을 짐작케 하는 근무지이다.
    특히 박정희는 만주 간도 특설대라는 특수 부대에서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군에게서 최상의
    칭찬을 받는데,바로 “상승의 조선인 부대“라는 칭호였다.

    박정희의 공식적인 독립군 토벌 기록은 없다.그러나 항일 투쟁 지역에서,그가 조선인이기에 독립군을
    토벌하지 않았다고는 믿을 수 없다.그 당시 만주 지역의 무장 항일 단체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과
    한국 독립군(韓國獨立軍), 중국 구국군(中國救國軍),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등이었는데.
    일본군과 싸우는 적을 섬멸하는 임무를 띤 만주군 소대장이 독립군 토벌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도 없고,역사적으로 해명될 수 없는 말이다.

    박정희는 일본 패망으로 승승장구하던 만주군 장교 생활에서 도망자 신세로 변할 즈음에 피난민으로
    위장하여 북경 광복군에 합류한다.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서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
    남로당에 가입한 뒤에 체포당하고,군 내부 남로당 계열 정보를 제공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좌우익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에서 박정희의 남로당 가입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그가
    군내 좌익 세포 정보를 모두 군정보조직에 넘겼고,그로 인해 여순 반란 사건 토벌자에서 간첩으로
    다시 우익으로 돌아갔던 그 변화무쌍한 박정희의 변신이다
    .특히 이 당시 숙군으로 구명을 받고
    살아난 사람은 박정희 단 한사람이었고,그를 도와준 세력이 바로 만주군 인맥이었다.

     

    항일 무장 단체를 토벌하던 사람이 다시 광복군으로 국군으로 변신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오히려 일본 정부의 도움으로
    일본 배상을 완결시키는 조건으로 미국으로 쿠데타를 인정받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억불
    배상은 원래 장면 정부가 내세웠던 30억불의 십 분의 일 금액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본 어업 협정을 통해서 일본의 독도 문제 정당성을 계속 유발하는 문제를
    대한민국에 남겨주고 갔는데,그는 독도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미국 순방길에 가서는
    독도 폭파를 주장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김종필의 발언과 박정희의 독도폭파 제안은 미국
    문서로 확인되었고,이는 일본 신문에 대서 특필되기도 했다)

    박정희에게 독도와 일본 배상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오로지 권력과 왕좌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도 용납되고,국민과 대한민국보다는 자신만의 삶이 우선되는 인물이었다.

    일본에 충성하는 친일우파는 3대가 잘사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거짓 꼴 못면한다.

     

     

     

     
    • 좆을까라 70.***.49.163

      평양에서 로그인할땐 평양 이라고 이름을 써라. 씹 쌔 끼 덜아.
      부자지간에 구멍동서인 정일이 족보부터 까봐.
      오늘도 썩은 시궁창 음식을 구걸하러 전세계로 돌아댕기는 평양의 구데기때덜…부끄러운줄 알고 닥치고 이런글 여기다 올리지마라.

    • ㅇㄴ 1.***.40.78

      예전에는 선동 삐라를 북에서 만들어 날렸는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더만. 남한 머저리들이 자진해서 삐라를 만들어 돌려보니까.

      박정희가 만주국으로 간건 일본놈 보기 싫어서라는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그러니 장교가 되어 고향 내려와 일본인 교장,서장을 자기 앞에 무릅꿀렸지. 당시 조선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통쾌하게 생각한지 아냐?

      물론 모르겠지. 배운적이 없을 테니.

      그리고, 해방후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장, 교수 포함 애국가를 4절까지 유일하게 알던 사람이 바로 박정희야.

      이런 사람이 친일파?

      웃기는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