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조건 – 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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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겸 변호사 125.***.186.193 1207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 (人)과 사이 ‘간’ (間)의 합성어인 만큼,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이 인간 관계의 연속성은 자신이 타인과 맺는 일종의 계약을 전제로 한다. 즉,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 자신도 모르게 크고 작은 계약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할인 쿠폰을 들고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는 것도 일종의 계약 행위이며, 친구와의 내기에 져서 술을 사는 것,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프로포즈를 하는 것에도 계약의 요건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계약이란 무엇일까. 계약의 법적인 정의는 청약 (Offer)과 승낙 (Acceptance)을 통한 상호 합의 (Mutual Consent)를 말한다. 하지만, 설령 상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완전한 계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약인 (Consideration)이라는 요건 또한 충족되어야 한다. 이 약인이라는 것은 독일 계약법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는 달리, 영미 계약법을 따르는 미국에 존재하는 특수한 조건이다.

    약인이란,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양측이 서로 교환하게 되는 거래상의 이익 혹은 손실을 말한다. 쉽게 말해, ‘Give and Take’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인이 반드시 물질적 가치를 지닐 필요는 없다. 계약법에 의거하면, “어떤 가치가 있는 무엇”이면 약인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되어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고, 특정 행위를 취하는 것 혹은 금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서로의 약인이 반드시 동등한 가치일 필요도 없다. 하루만 길거리에 껌을 뱉지 않는다면 천만불을 주겠노라 누군가 약속을 했다면, 이 계약에도 약인의 조건은 충족되는 것이다.

    예컨데, 철수는 영희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하며 반지를 사준다. 영희는 “Yes!”를 외치며 기쁘게 받는다. 이경우, 철수는 반지 (일종의 가치가 있는 그 무엇)를 영희에게 주는 대신 결혼을 약속 받았고, 영희는 다른 모든 사람과의 결혼 기회를 포기 (일종의 손실)함으로써 반지를 받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약인의 조건을 충족한다. 만약, 철수가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영희에게 반지를 사주는 경우라면 어떨까. 결혼은 이미 작년에 이루어졌고, 영희는 철수의 반지와 교환할 그 어떤 손실도 없기 때문에, 여기엔 약인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이것은 계약으로 볼 수 없다.

    부동산 계약을 예로 들면, 철수가 영희의 건물을 백만불에 청약하고, 영희가 이를 승낙하여 계약이 성립되었을 경우, 철수의 약인은 백만불이며, 영희의 약인은 건물인 것이다. 다른 예로, 철수가 건물 구매를 청약하면서 천불의 계약금을 미리 지급할 경우, 철수의 약인은 그 계약금이고, 건물을 매매시장에서 내리고 다른이에게 팔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가 영희의 약인이 될 수 있다.

    부동산 계약에 관련하여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구매자의 약인이 반드시 계약금 (Earnest Money)이어야한다는 것이다.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계약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계약이 법적으로 무효가될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계약서에 별도의 명시가 없는 경우, 약인의 요건 충족을 위해 반드시 계약금이 지불될 필요는 없다. 여러 조건에 맞춰 구매자가 그 건물을 사겠다고 하는 약속 자체도 약인이 될 수 있으며, 그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을 찾아볼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 역시 약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금이 요구되는 이유는, 계약금이 이미 지불된 거래에서는 그 계약이 파기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허수 구매자들을 거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계약금 제도가 널리 사용되는 것 뿐이다.

    모든 문서가 전자화되고 인터넷이 주요 통신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이 세대에, 과연 계약법이 어디까지 확장 적용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특히 부동산 계약에 늘 사용되는 E-Signature, 전자문서, E-Mail 등의 새로운 특성들이 전통 계약법을 통해 다양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해석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추후 다양한 해석을 통한 기준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청약, 승낙, 그리고 약인과 같은 기본요소가 계약분쟁을 최소화하고 법의 상대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필수도구임은 변함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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