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일이 없네요

  • #3471905
    baincs 73.***.32.220 3722

    집에서 일하다 보니깐 아무리 운동 하고 나가서 걷고 해도 농땡이만 피우고 (하루에 4시간도 일 안하는 듯) 생각이 많아지네요.

    어떻게 근근히 버티고 살아가고는 있는데… 만 32인데 모든 게 조금씩 늦다 보니 계속 밀려서 학사 졸업 후 SWE 경력 이제 3~4년이네요. 안정은 됐는데 지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매니저가 되기엔 의사소통 능력, 카리스마 같은 게 부족하고 성격상도 안 맞고 미국인이 아니라서 더 힘든 것 같은데, 언젠가 제 회사를 경영하고 싶어서 포기를 못하겠네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매니저로서의 자질을 기르려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해야 되는데 그런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부딪히니… 모든걸 영어로 하는데도 영어는 진짜 찔끔찔끔 늘고…

    회사를 세워서 성공적으로 키우고 싶다는 꿈을 어릴 때부터 갖고 왔고, 당장 학점, 취직 매달릴 때는 안정만 되면 좋은 아이디어로 프로덕트를 만들어서 론칭해서 회사도 잘 굴러가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근데 막상 안정이 되고 1~2년 안으로 뭔가 해보려면 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되니 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냥 별 것도 없는데 운 좋게 프로덕트가 성공해서 잘 나가는 회사 CEO, CTO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일단 미국인이고, 엄청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왜 이제 와서야 보이는지. 그리고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든 뭐든 자질이 없으면 그 자리까지 회사를 끌고 갈 수가 없다는 게 예전에 꿈만 꿀 때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이제 겨우 한 계단 올라오니깐 그들한테 있고 나한테 없는 자질들이 더 부각되어 보입니다.

    앞으로 한 1년 안으로 시니어 엔지니어가 되는 게 그나마 좀 현실적인 목표인데, 회사 안에 다른 시니어 엔지니어들 보면 미친듯이 똑똑한데다가 열정까지 넘치는데 한참 멀어보이고..

    그래도 운동 하고 자기계발 꾸준히 하니깐 뭐라도 발전하는 느낌은 있지만 솔직히 회사에 똑똑한 애들은 시작부터 나랑 다르니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듭니다. 내가 나이도 최소 5살은 많은데.. 나는 그냥 한국에 자영업 하시는 평범한 부모님 아래서 20살까지 헛된 꿈만 꾸고 그냥 게으르게 살다가 미국 오고서 어떻게든 나보다 나은 그룹에 어거지로 껴서 때로는 묻어가고 대부분은 낑낑대며 발끝을 따라가는 삶만 살았는데, 걔네들은 보니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뛰어난 부모 아래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뛰어난 머리로 내가 나이 다 먹고서 배워간 것들 어릴 때 다 배워놓고 실무 경험까지 쌓으면서 쉽게 쉽게 헤쳐 나가니…
    그냥 능력이 보통이면 꿈도 보통이었다면 그냥 평범한 일 하고 살면서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전 그것도 안 됩니다.

    요즘 그나마 낙은 안 나가니 저축이 좀 더 되고 주식 하면 장이 상승세라 웬만한 걸 사도 올라 주니깐 돈 모이는 재미는 좀 있네요. 근데 이 나이에 이제 겨우 5~6만불 모았고 (실직 기간이 있어서 까먹고 다시 모으다 보니) 월 2~3천불씩 모으면 많이 모아봤자 몇 년 뒤 10~20만불인데 싱글이면 모르지만 결혼하고 애 낳는다면 빚 내고 쪼들려가며 애 키워야 되고…

    그래도 착한 여자친구라도 있지만 이렇게 열심히 자기계발 하고 미국 언어 문화에 동화되려고 노력하는데 몇 년 뒤면 내가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그 때도 걔랑 잘 맞을까? 하는 생각, 혹시 더 나은 사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혼은 아직도 모르겠고 여건도 안되고 코로나 때문에 본국에서 못 돌아오는 상황이라 네 달 째 만나지도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일도 안하고 이렇게 워킹유에스에 와서 푸념을 늘어놓네요… 한글 사이트 안 가기로 한 다짐은 어디 가고…

    • 지나다 73.***.16.13

      저의 10년 전 모습을 보는거 같아 몇 글자 남깁니다. 씨니어 엔지니어는 달 수 있을겁니다. 평소 열심히 하는 한국인 체질인 이상 그 레벨까지는 다들 가더군요. 문제는 그 이후인데 메니저 트랙을 탈려면 지금부터 빨리 줄을 잘 잡으세요. 회사내 승진도 인정도 다 인간 관계입니다. 일로서 슈퍼바이져에게 인정받고 그 위에 메니져의 필수 인맥에 들도록 성과를 내세요. 잘나가는 팀을 선택하는게 미국에서 지도교수 선택과 마찬가지로 복불복이지만 운도 노력을 안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윗사람 눈치만 살피라는건 아닙니다.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좋은 피드백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철저히 팀리더로서 계속 승승장구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보통 2-3년 안에 자신이 판단이 섭니다. 자신을 믿고 정진하세요. 굿럭!

    • 힘내세요 ! 12.***.152.66

      힘내세요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데, 나이는 저보다 4살이나 어리시네요 하하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

    • 하하 142.***.132.151

      아이고 32살이면 한창중에서도 한창인데요?
      저는 35살 아줌마 디벨로퍼예요 ㅎㅎ
      이제 내년에 졸업하면 36살에 주니어 디벨로퍼가 되겠죠?
      저는 대신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들도 있어서, 미래에 중요한 결정은 다 끝낸상태라
      어쩌면 조금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덜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어린나이에, 이미 현직에 계시고
      게다가 짱짱한 동료들과 일하고 계신것보면,
      아마 님도 그런 출중한 멤버중 하나라고 보여져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너무 치열한 사회속에 계셔서 약간은 지친걸수도 있겠다 싶어요!
      님이 제 남동생이라면 그저 잘하고 있다 등 두드려 줄것 같아요.
      잘하고 있어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주말이니 하루 이틀 푹쉬고, 맛있는거 먹고!
      기운내시길 바랍니다 🙂

    • 미션 99.***.109.73

      군대는 갔다왔어요? 32살인데 푸념을해. 어이가없네요 빡시게 노가다 한달만 뛰어봐야 정신차리지

    • 11 75.***.63.6

      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겁니다. 그래도 먹고살 직장이 있고 여친도 있자나요. 비슷한 고민을 석사할때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직장도 없고 뭐 더힘들었던것 같습니다. 언어적인 부분은 평생 노력하는 수 밖에 없겠죠. 여친은 여친일 뿐이므로 편하게 생각하세요….

    • 지나가다 76.***.240.73

      32이나 36이나 뭐…
      왜 여기 오는분들은 다들 매니져에 목숨거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시니어 타이틀을 달고 10년을 일해도 어떤곳에가면 다시 신입. 그냥 디벨러퍼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니 너무 포지션에 목숨걸진마세여. 코딩 좋아하면 매니져보단 계속 개발하는게 본인한테는 행복한겁니다. 적게 돈받고 매니져하는이 대우받고 아무도 못건드리는 개발자 삶이 휠씐 좋습니다. 사업은 비즈니스입니다. 영업과 돈흐름 그리고 배짱도 두둑해야하는겁니다. 비즈니스할려면 현업무 기본부터 충실하셔야 다음에 사람도 고를줄 알죠. 일을 몇시간 하느냐가 아닌 어떤 아웃풋을 내는 사람이 나한테 프라핏을 안겨주는지 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 Like water 173.***.240.166

      Don’t be hard on you !

    • Hh 216.***.212.217

      Think of glass half full! 32살에 모아놓은 것도 많으시고개발자로 경력도 있으시고 이미 많은 것을 이루셨네요

    • 읽다가 99.***.218.46

      토닥토닥…
      저의 30대 초반을 떠올게 하는 글입니다. 사력을 다하면서 살아가는데, 여전히 막막하기만 했던 그 시절
      차라리, 50대-60대가 빨리 되었으면 하고 바랬던 그때…
      화이팅 하시고요.

      노래 하나 드릴께요.
      미국직장이 아니라, 한국직장이 배경인 노래이지만, 저에겐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고, 힘을 내서 버티시면 그때가 그래도 가장 활기찼던 시기라는 생각이 들겁니다. 다시 화이팅!

    • 부럽네 108.***.156.237

      솔직히 부럽네요. 젊음이.

      계가다 미래에 대해 건전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도 많이 성장하실듯.

    • 늘 고마워하며 살아보자 172.***.207.79

      앞날에 꿈을 크게 가지고 희망을 가지되
      현재를 마음껏 즐겨보세요.

      돈 모으는 것도 좋기는 좋지만
      돈 그리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살 수 있어요.

      기왕쓰는 돈이라면 즐겁게 뿌듯하게 써보세요.
      기왕 저축하는 돈이라면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 보세요.

      어차피 바꿀수 없는 처지나 환경이라면
      그저 이만큼이라도 감사하구나 하며 기뻐하세요

      틈틈히 지혜롭게 Money management하는 법을 배우세요.
      인생은 Balance랍니다.

      은퇴한 후 70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삶의 Balance는 지키며 살아가고 있네요.

    • baincs 73.***.32.220

      답글을 많이 남겨 주셨네요. 동감도 많이 해주시고..
      역시 동양인으로 이민 와서 살아가는 사람들 일하는 거나 고민이나 비슷비슷한 거겠죠.
      지난 시간 돌아보면 항상 이런 고뇌와 방황의 시간 후에 한 단계 도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려니 할 때도 되긴 했는데 직장이며 신분이며 여러 가지가 안정이 된 상태에서 이런 건 또 처음이라 조금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다시 길게 보고 묵묵히 노력 하는 수 밖에 없겠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군대는 갔다 왔고 돈은 원하는 거 있으면 쓰는 편입니다.. 하하

    • 111 71.***.48.36

      일베에 장악당안 workingus 답지 않게 좋은 글 많네요 ~

    • 지나가다 104.***.166.31

      오랫만에 훈훈한 극히 정상적인 답글들이네요.. 네 시작이 반입니다. 열심히 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열심히 못해서 후회하는 조만간 은퇴할 나이가 되가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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